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정태춘ㆍ박은옥 부부는 표현의 자유와 평화예술을 상징하는 아티스트로 불린다. 1980~1990년대 격동의 시대에 열성적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한 두 사람은 서정적인 가사와 국악적 특색을 담은 음률로 대중에게도 큰 사랑을 받은 싱어송라이터다. 민중가객이자 음유시인, 사회운동가, 포크음악의 거장 등 여러 수식어가 말해주듯이 사회ㆍ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정태춘ㆍ박은옥의 데뷔 40주년 기념 전시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개최된다.4월 29일까지 열리는 ‘정태춘ㆍ박은옥 40주년 기념전 : 다시, 건너간다’전은 많은 문
이순신이 주둔하던 당시에는 제승당制勝堂이 아니라 운주당運籌堂이었습니다. 운주란 ‘계책을 운용하다’는 뜻입니다. 작전 본부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이순신은 좋은 계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운주당에 와서 의견을 낼 수 있게 했습니다.그러나 원균이 삼도수군 통제사가 된 후엔 애첩과 밀회를 나누는 장소가 됐습니다. 회의와 협의가 중단됐고, 외부와의 교류와 내부 소통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조선 수군은 칠천량에서 궤멸당하고, 운주당도 불에 전소돼 사라졌습니다. 그로부터 150여년이 흐른 1738년(영조 15년)에야,
현대인은 네트워크 접속과 함께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건네는 이미지와 정보를 소비하고, 로그인된 디지털 세상에서 타인 혹은 집단과 ‘관계 맺기’를 한다. 디지털 세상 안에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 누군가와 소통하고 실제 세계와는 또다른 나의 정체성과 인격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스크린 속 디지털 네트워크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또 다른 사회가 존재한다.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열리는 당신의 하루를 환영합니다(Welcome! You Are Connec ted!)전은 하루 중 대부분을 스크린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일
한산도해전이 시작되자 이순신은 대여섯척의 판옥선을 내보냈습니다. 한니발이 전진배치했던 경무장 보병과 같은 역할이었지요.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해적 출신의 수군 명장이었습니다. 다섯척의 판옥선이 이순신의 유적계誘敵計, 이를테면 유인책일 가능성도 생각했을 것입니다.그러나 와키자카는 자신 있게 주력부대를 모두 이끌고 쫓아왔습니다. 이순신이 유인작전을 썼다 해도 충분히 조선 수군을 압도할 수 있다고 착각한 겁니다. 그의 함대도 작은 규모가 아니었으니까요. 대여섯척의 판옥선을 추격하던 일본 함대가 정신을 차려보니, 아뿔싸! 어느새 조선 함대에
오페라 ‘아드리아나 레쿠브레르’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아드리아나는 실존 인물이다. 1692년에 태어난 그녀는 1700년대 프랑스 연극무대를 대표하는 배우였다.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 장 라신, 볼테르 등이 쓴 연극의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프롤로그 = 연극배우 아드리아나 레쿠브레르는 작센의 백작 마우리치오와 사랑에 빠진다. 한편 부이용(벨기에의 한 지방)의 왕자는 또다른 배우인 두클로스와 내연관계다. 그는 두클로스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하지만 정작 왕자를 배신한 것은 자신의 부인인 왕세자비다. 마우리치오
“예술 사진이란, 사진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사위寫僞에 접근하려는 정신의 의도意圖다. 그는 그런 시도에 있어서 한국의 기수 중 하나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사진작가 임영균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의 1세대 포토그래퍼로 손꼽히는 임영균은 백남준의 말대로 현상現象 너머의 본질本質에 주목하며 시대를 읽어내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길이구 갤러리는 5월 9일부터 25일까지 임영균 개인전 ‘백남준, 지금 여기 NAM JUNE PAIK, NOW HERE’을 개최한다. 전시 주제는 임영균의 작가적 눈으로 바라본 아티스트 백남준의
인터넷에 한산도대첩을 검색하면 진주대첩ㆍ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아울러 국제적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긴 전투라는 표현도 종종 등장합니다. 이순신의 학익진과 한니발의 칸나에 전투The Battle of Cannae전세계의 해군사관학교에서 한산도해전을 가르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서구의 거의 모든 사관학교에서 가르치는 전투가 있습니다. 한니발 장군의 카르타고군이 로마군과 맞붙었던 ‘칸나에 전투’입니다.전투에서 압승하기 위해선 포위섬멸전이 가장 좋습니다. 전투에서 승리해도 적군의 주력과 지휘관
배설이라는 인물을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물론 「난중일기」를 읽어보면 좋게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는 원균의 명령에 불복종해 최소한의 수군 병력을 지켜냈고, 한산도 통제영에 있던 막대한 군사물자가 왜군의 손에 넘어가는 것도 막아냈습니다. 전란 직후 처형됐지만 6년 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추증돼 사면ㆍ복권됐습니다. 나름대로 억울했고 군인으로서 노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한산도대첩 : 세계 해전사史의 별이 되다 앞서 명량해전을 말할 때, 이순신의 전투 방식을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이순신의 전투 방식은 철저한 정
이순신은 임진왜란 다음해인 1593년 8월 15일 초대 삼도수군 통제사로 임명됐습니다. 앞서 말했듯 통일된 지휘체계의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입니다. 이순신은 삼도수군 통제사로 내정됐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도수군 통제사로 임명되기 한달 전인 1593년 7월 15일, 이순신은 한산도로 본영을 옮겼습니다. 한산도 통제영의 건축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이순신은 한산도 곳곳으로 진을 옮기며 왜군을 공격했습니다. 전라도로 가는 바닷길을 틀어막기 위해서였습니다. 1593년 3월 8일, “한산도로 돌아왔다”는 표현이 처음으로 「난중일기」에 등장합
2017~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수집한 소장품들이 처음 대중에게 소개된다. 9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신소장품 2017~2018’전은 최근 2년간 수집한 458점의 작품 중 회화ㆍ조각ㆍ사진ㆍ미디어ㆍ공예 등 다양한 장르의 150여점을 선보인다. 이중섭ㆍ이응노ㆍ하종현ㆍ양혜규ㆍ한스 하케 등 국내외 70여명 현대미술가의 작품 중 비교적 전시 기회가 없었던 작품들이다.이번 전시는 그런 의미에서 더욱 특별한 기회라 할 수 있다. 작품 제작 및 소장 과정에 얽힌 이야기를 학예사ㆍ작가ㆍ유족 등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하는 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할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 「청구영언」 영조 때 김천택이 유명한 글을 모은 문집…그래서 뒤쫓아 들어가니, 대선 서른여섯척과 중선 스물네척, 소선 열세척 모두 일흔세척이 대열을 벌려서 정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견내량의 지형이 매우 좁고, 암초가 많아 판옥전선은 서로 부딪히게 될 것 같아 싸움하기 곤란했습니다. 왜적은 만약 형세가 불리해지면 기슭을 타고 뭍으로 올라갈 것이므로, 한산도 바다 가운데로 유인해 모조리 잡아버릴 계획을 세웠습니다.한산도
전시장에 들어서면 광목 위에 그려진 두 선이 인상적인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김호득 작가의 ‘흐름(2018년)’이다. 강렬한 필치의 두 선의 부딪침이 마치 어떤 기류의 충돌처럼 느껴진다. 여백 위의 먹점들은 시간ㆍ공기 등 보이지 않는 대상의 움직임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듯하다.수묵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목 받고 있는 김호득의 개인전이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린다. 김호득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요소를 고루 다루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수묵화가다. 타이베이 당다이ㆍ한국국제아트페어 등 최근 국제 아트페어에서 해외 컬렉
오페라 ‘이리스’는 이탈리아의 사실주의 오페라 작곡가 피에르토 마스카니의 작품이다. 오페라의 도입 부분과 끝에 등장하는 합창곡 ‘태양의 찬가’는 1960년에 열린 로마 올림픽의 공식 음악으로 사용될 만큼 유명하다. 여자 주인공 이리스가 부르는 아리아 ‘내가 어릴 적에’는 당시 유행했던 일본 그림 ‘어부의 아내의 꿈(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어 작곡한 것으로 추측된다.이 작품은 1800년대 후반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일본풍 작품 중 하나다. 실제로 지아코모 푸치니가 일본을 배경으로 작곡한 오페라 ‘나비부
“창조의 모든 행위는 파괴에서 시작된다.”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입체주의(큐비즘)를 대표하는 작가다. 그의 말처럼 입체주의는 전통회화 형식을 파괴하며 20세기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바꿔놨다. 전통규범에 구애받지 않는 표현의 자유로 추상미술을 탄생시킨 입체주의는 르네상스 이래 서양미술사의 가장 획기적인 미술혁명이라 할 수 있다.입체주의 미술의 탄생에서 소멸까지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피카소와 큐비즘’전은 파리시립근대미술관이 소장한 진품 명작 90여점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통영시는 통제영이 있던 도시입니다. 통영시의 일부는 한때 충무시忠武市였습니다. 충무시의 충무는 충무공忠武公에서 왔습니다. 충무 김밥의 유래도 충무시입니다. 통영 충렬사는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선조 39년 1606년, 제7대 이운룡 통제사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했습니다. 현종 4년 1663년에는 남해 충렬사와 함께 사액사당이 됐습니다. 사액사당이란 임금이 ‘현판(額)을 내린(賜)’ 사당이라는 뜻입니다. 그 후 역대 수군통제사들이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습니다.통영 충렬사에는 유물 전시관이 부속돼 있습니다. 충렬사 유물 전시
익숙한 단어 몇 개를 떠올려 봅니다. 통영, 충무 그리고 충무김밥. 모두가 임진왜란이나 충무공 이순신과 연관된 단어입니다. 400여년 전에 만들어진 단어를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다니, 새삼 신기합니다.통영이라는 지명은 ‘삼도수군 통제영三道水軍 統制營’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원래 이름은 ‘가배량수’였는데 통제영이 세워진 후부터 통영이라 불리게 됐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초대 삼도수군 통제사였습니다. 삼도三島는 충청도ㆍ경상도ㆍ전라도를 뜻하고, 삼도 수군은 충청 수영ㆍ전라 좌수영ㆍ전라 우수영ㆍ경상 좌수영ㆍ경상 우수영을 의미합니다. 전라
20세기 중후반 아시아는 격동과 파란의 역사를 겪었다. 탈식민과 냉전에 뿌리를 둔 이념 대립, 베트남 전쟁, 민족주의 대두, 근대화, 민주화 운동 등 역사적·사회적 문제에 직면했다.급변하는 정세와 문화에 예술도 반응했다. 예술가들은 권위와 관습에 저항하고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태도를 취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사회와의 관계망 속에서 예술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실험적 미술 운동을 통해 주체성을 자각하고, 서구 근대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5월 6일까지 열리는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이순신의 탁월함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승리를 해나갔다는 데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순신의 승리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과 조선 수군은 목포 고하도에 석달 열흘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사이 본격적으로 수군 재정비를 진행했죠. 지금도 목포 고하도에는 이순신 장군을 기려 세운 모충각이 있습니다. 고하도뿐만 아니라 목포 곳곳에서 이순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목포 유달산의 끝자락에는 큰 바위로만 이루어진 봉우리가 하나 있습니다. 높이가 60m가량으로, 20층짜리 건물만한 크기입니다. 그 봉우리의 이름은 노적봉
닮은 듯 다른 두 작가가 우리를 둘러싼 동시대 풍경을 그려냈다. 한사람은 감각적인 접근 방식으로, 다른 한사람은 구조적이고 직관적인 접근 방식으로 각각의 시선을 담아낸다. 학고재 청담에서 열리는 ‘시몬 미나미카와 & 네이슨 힐든전’은 도쿄와 뉴욕에서 활동하는 시몬 미나미카와南川 史門와 로스앤젤레스에서 작업하는 네이슨 힐든(Nathan Hylden)의 회화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도쿄에서 태어나 뉴욕ㆍ베를린 등에 살았던 미나미카와는 대도시에서 범람하는 이미지의 재현과 표현에 집중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그의 작품은 최근 3년간의
오페라 ‘말 없는 여인’은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70세가 되던 해 작곡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젊은 여인과 결혼하려는 늙은 주인공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의 오페라 ‘돈 파스콸레’ ‘팔스타프’ 등과 매우 비슷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말 없는 여인은 1935년 독일 드레스덴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됐지만 무대에 오른 지 세번 만에 당시 독일의 총통이었던 히틀러가 공연을 금지했다. 이 작품의 대본을 쓴 슈테판 츠바이크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프롤로그 = 해군장교로 퇴역한 모로서스경卿은 조용하고 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