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문 작가가 지난 16일 죽었다. 자살로 알려졌다. 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책으로 알려진 작가다. 1992년에 발간된 이 소설은 ‘후일담 문학’으로 분류된다. 그는 민주주의가 이뤄진 1990년대에 자신이 관통해온 운동권 세대의 방황을 그렸던 작가였다.그래서 나에게 박일문 작가의 죽음은 한 세대의 마침표처럼 느껴졌다. 글이 발표되고 10여년 뒤 그는 성범죄로 교도소에 갔다. 그가 운동권 성폭력 실명공개의 대표 사례로 뽑혔음을 생각했을 때 그의 삶은 어떤 면에서 ‘클리셰(clich·진부한 틀)’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부당합병 의혹 건으로 기소된 재판(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 증명이 없다”고 밝혔다.이에 따라 함께 기소돼 수년간 재판을 받아온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13명의 피고인에게도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의 주장은 왜 뒤집힌 걸까. 하나씩 살펴보자. ■ 검찰의 판단 = 이 회장 등은 2020년 9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
중국은 3세기부터 목판 인쇄를 했다.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나라는 고려다. 그럼에도 15세기에 개발된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의 인쇄기가 ‘혁신의 산물’로 꼽히는 건 여러 장을 한번에 인쇄할 수 있는 ‘압축기술’ 때문이다. 구텐베르크의 기계식 인쇄 방법을 오프셋인쇄(offset printing)가 출현하는 20세기까지 그대로 사용했다는 건 더 놀라운 일이다. 15세기 서양의 지식 혁명에 불을 지핀 주인공인 그는 포도주를 짤 때 사용하는 압착기를 개조해 근대적 인쇄기계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를 ‘근대
‘국민앱’ 간판이 바뀌었다.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1월 월간활성사용자수(MAU) 순위에서 유튜브가 4547만3733명으로 카카오톡(4524만9744명)을 22만3989명 차이로 따돌리고 1위에 올랐다.순위 변화의 시그널은 2023년에 감지됐다. 당시 1위였던 카톡과 유튜브의 MAU 차이가 그해 1월 125만7165명에서 12월 336명으로 확 좁혀졌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변화는 모바일인덱스가 같은해 12월 30일 iOS(애플)의 데이터 생성 방법과 사용량 추정치 산정 방식을 업데이트하면서 나타났는데, 이때 유
지난해 6월 군포시가 ‘학교사회복지사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자 논란이 일었습니다. 사업의 주체, 예산 등의 문제를 들어 “학교사회복지사 사업에 예산 편성이 어렵다”는 게 골자였죠. 학생과 학부모, 시민단체가 들불처럼 일어났고, 경기도의회는 그해 12월 ‘학교사회복지사업의 예산을 지원하는’ 조례를 통과시켰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업이 지속할지는 의문입니다. 더스쿠프가 이 예민한 문제에 펜을 집어넣었습니다.지난해 10월 경기도 군포의 학생들이 군포시청을 찾았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었습니다. 이제 학교를 떠나 성인이 되는 학생들
# “팬데믹 때보다 더 힘듭니다.” 자영업자의 아우성은 종종 볼멘소리 취급을 받는다. “가게 문도 못 열고 테이블 치우던 때보다 더 힘들 수 있나”란 막연한 추측 때문이다. “너희들은 보상금도 받았잖아”란 부러움과 박탈감에서 기인한 비아냥일 수도 있다. # 하지만 2024년 자영업자는 정말 고통스럽다. 물가는 치솟았는데, 소비심리까지 꽁꽁 얼어붙어서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출 금리에 돈줄이 막힌 사장님들도 숱하다. 이젠 팬데믹을 그럭저럭 버텨오던 자영업자마저 ‘벼랑 끝’에 몰렸다는 통계까지 나오고 있다. # 실제로 자영업자의 대출액
음식을 통해 삶과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아시안푸드레스토랑 ‘쿤댕’ 대표 최진혁 [알립니다]「정치호의 얼굴」은 독자와 함께 합니다. 촬영을 희망하시는 독자께선 간단한 사연과 함께 연락처를 chan4877@thescoop.co.kr(더스쿠프)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정치호 작가 사진보기 | portraits.kr
표절 논란으로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게임 ‘다크앤다커’가 최근 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 1월 27일 법원이 “우리 소스를 가져다 만들었다”면서 다크앤다커 제작사를 상대로 제기한 넥슨코리아의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기 때문이다. 넥슨 측은 “표절 여부가 결정된 건 아니다”는 입장이지만, 게임업계 사람들은 ‘표절 논란에 관대한 입장을 취한 법원의 태도’를 주목하고 있다. 이 표절 논란의 결과는 어떤 방향으로 흐를까.2023년 촉발한 게임사 넥슨과 아이언메이스 간 ‘저작권 소송전’이 뜻밖의 전환점을 맞았다. 수원지법 민사31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쓰는 소설들이 많아졌다. 거대한 참사나 사건을 쓰면서 피해자들이 기억하고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변인들의 사생활을 재현하는 문제가 생겼다. 2024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재현의 윤리는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동아일보 2024년 중편 신춘문예 당선작이 논란에 휩싸였다. 중편 당선작 ‘호모헌드레드(이상민 작가 作)’가 오토픽션(auto fiction)이라는 고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토픽션이란 자신을 뜻하는 그리스어 ‘auto’와 허구를 뜻하는 ‘fictio
“플라스틱 빨대 규제를 완화했는데 시민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건 스타벅스 같은 업계 1위가 플라스틱 빨대를 도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5일 박은식 국민의힘 비대위원이 제1차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내놓은 발언이다.박 비대위원은 플라스틱 빨대를 확산시키기 위해선 환경부의 적극적인 행정과 스타벅스와 같은 업계 1위 기업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표➊). 플라스틱 폐기물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여당 정치인이 종이빨대를 이미 도입해 사용하고 있는 커피전문점에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독려하고 나선 셈이다(표➋). 논란의 플라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위태롭다. 그러자 ‘보험료율을 올리자’ ‘건강보험 혜택을 줄이자’는 주장이 심심찮게 나온다. 국민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정부가 한발 뺀 채 국민에게만 부담을 요구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현행법상 정부는 국고에서 일정 비율의 금액을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을 위해 써야 하는데, 이를 지킨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너무나 복잡해서 우리가 잘 몰랐던 ‘건보의 비밀’을 파헤쳐봤다.“국민건강보험 재정수지는 2026년부터 적자로 돌아선다. 그해 재정수지는 3072억원 적자를 기록한다. 이후 적자폭은 매년 늘어 2
■ AI 워싱(AI Washing) = 2019년 인도의 스타트업 ‘엔지니어 AI(Engineer.ai)’가 “인공지능(AI) 기반의 앱 개발 플랫폼을 만들었다”는 허위 주장을 했다가 적발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앱을 개발한 건 AI가 아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팀 개발자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엔지니어 AI는 이 허위광고로 소프트뱅크 등을 비롯한 투자자들에게 3000만 달러(약 400억원)대 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IT업계에선 이를 ‘AI 워싱(AI Washing)’이라 부른다. AI 워싱은 실제로는 AI와
만나선 안 될 사람 왜 죽었냐고 물어봤더니하늘에서 대답하길말에 색을 입혀 이간질하는, 없는 말 꾸며가며 뒤통수치는,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간에 가서 붙었다 쓸개에 가서 붙었다 하는, 질 것 같으면 무조건 우겨대는살면서이런 사람 만나면열받아서 단명한다「계간문예」, 2022년.중장이 아주 긴 이런 시조를 엇시조라고 한다. 종장을 제외한 어느 한 장이 평시조의 자수보다 많다. 조선조 후기에 많이 창작되었는데 현실비판과 인간풍자의 주제가 주를 이루었다. 사설시조는 초장과 중장 다 길이 제한이 없이 길어진 시조를 가리킨다.이 세상 사람
2024년은 세계적으로 76개국에서 선거를 치르는 ‘슈퍼 선거의 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1월말 세계경제 전망을 수정 보완하면서 전반적인 저성장, 두 개의 전쟁(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함께 이를 거론하며 “위기 요인은 여전하다”고 진단한 배경이다.선거가 많다고 민주주의가 탄탄해지지도, 경제가 나아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표를 노린 선심성 공약이 난무하는 등 경제가 정치에 휘둘리며 악영향을 받는 ‘폴리코노미(Policonomy=정치·politics+경제·economy)’ 현상이 두드러진다.세계가 가장
때아닌 상속세 논란에 나라가 시끄럽다. 정치권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영향을 주는 상속세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서다.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상속세법의 개정을 두고 의견이 오가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상속세를 완화하거나 폐지할 경우’ 국가 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도는 고려해야 한다. 그런 논의도 없이 선거를 앞두고 상속세 완화나 폐지를 거론하는 것은 포퓰리즘일 뿐이다. 상속세는 죽음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세금보다 비장하다. “상속은 사망으로 인해 개시된다”란 민법(제997조) 조항처럼, 상
주변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것은 이제 어렵지 않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대한민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2014년 180만명에서 2022년 220만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그런데도 외국인을 우리와 동떨어진 이방인으로 보는 시선은 여전하다. 다른 언어와 낯선 행동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이질감은 막연한 불안을 낳는다. 낯섦은 차별과 혐오를 만든다.이런 사회 현상을 반영하듯 이방인의 삶을 다룬 작품이 늘어나고 있다. 일명 디아스포라(dia spora·고국을 떠난 사람) 작품이다. 제15회 세계문학상 대상을 받은 「로야」부터 애플
# 우리는 視리즈 ‘황금기 웹툰의 그림자’ 1편에서 호황기를 맞은 웹툰 산업이 마주한 어두운 단면을 살폈습니다. 웹툰 시장이 커지고 있는 것과 반대로 웹툰 흥행의 1등 공신인 작가들의 처우는 이전보다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정부와 플랫폼에서 나름대로 방안을 내놓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뿐만 아니라 웹툰 산업 전체를 좀먹는 ‘불법 사이트’도 횡행하고 있습니다. 무단으로 웹툰을 무료 배포하는 탓에 천문학적인 피해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근절할 만한
국내 경제를 괴롭혔던 고물가 기조가 한풀 꺾일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1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0%를 기록했다. 2022년 3월 2.9%를 기록한 이후 최저치다. 소비자심리지수는 101.6을 기록하며 지난해 9월 이후 5개월 만에 기준선 100을 웃돌았다. 얼어붙었던 한국 경제에 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건데,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더스쿠프가 2월 주요 경제 이슈를 정리했다.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펄펄 끓는 물 속에서도 살 수 있는 벌레가 있다면 믿을 수 있나요? 갯지렁이의 일종인 ‘폼페이 벌레’는 120도 온도의 바닷물을 내뿜는 심해 열수구 기둥에 붙어 삽니다. 대부분의 동물은 40도만 넘어도 뇌나 신체조직에 문제가 생기지만, 이 벌레는 멀쩡하죠.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걸까요. 학자들은 폼페이 벌레의 몸 전체를 빽빽하게 덮고 있는 하얀 털 덕분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털 사이에서 사는 세균이 열을 차단하는 특수 효소를 분비하기 때문에 뜨거운 온도에서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지구는 아직도 신비한 것 투성이네요. 이윤주·조창원
전쟁터에서 분투를 거듭하던 이순신을 괴롭히는 건 왜적만이 아니었다. 조선 조정에서 만들어낸 ‘유언비어’도 순신을 벼랑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였다. “이순신이 연해의 해왕海王 노릇을 한다.” 그 중심엔 순신에게 질투를 느낀 서인이란 일종의 카르텔과 귀가 얇은 왕이 있었다.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금 정치판이나 그때나 다를 게 없었던 모양이다.한산도 진중에 전염병이 유행해 순신까지도 병으로 신음하고 있던 1594년 4월 9일. 진중에서 무과 별시를 시행하고 합격자를 알리는 방을 붙이고 있는데, 비가 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