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가려는 초超와 해海. 둘은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부유한 집안의 딸 홍紅을 납치한다. 천진한 성격의 해는 납치가 나쁜 짓인 줄 알면서도 바다를 향한 열망으로 초에게 동조한다. 초가 홍의 몸값을 얻어내기 위해 전보를 치러간 사이, 해는 괴로워하는 홍을 풀어준다. 홍은 해에게 다가가 “나를 모르겠냐”며 말을 건다. 돌아온 초는 홍과 해가 가까워진 것을 보고 화를 낸다. 갈등이 이어지면서 초와 해, 그리고 홍 사이에 숨은 관계도 드러난다.뮤지컬 ‘스모크’는 난해하지만 개성 있는 작법으로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 ‘천재’로 불리는 시인
오페라 ‘서민귀족’이 ‘오페라 발레’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당시 프랑스 국왕이었던 루이 14세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발레 마니아였던 루이 14세는 발레 작품을 연출하고 출연할 정도로 발레를 즐겼다고 한다. ‘졸부’ 주르댕은 귀족이 되길 갈망하는 인물이다. 그는 귀족의 삶을 배우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를 고용한다. 하지만 무식한 그가 귀족 문화를 익히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2막 = 진정한 예술을 두고 벌인 음악‧무용‧검술(펜싱)‧철학선생의 싸움이 일단락된다. 이윽고 주르댕과 철학선생의 수업이 시작된다. 철학선
거짓미소는 지을 수 있을지 몰라도 뒷모습으론 거짓을 말하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와 비로소 긴장이 풀려 잠든 뒷모습처럼 억지웃음으로 치장한 가면을 벗어던진 다음에야 옅게 미소 짓는 모습에서 그 사람의 진짜 속내를 본다.한지민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남자는 등을 돌린 채 바닥에 눕는다. 책을 읽는 누군가는 흘러내린 머리카락 탓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등을 돌리거나 잔뜩 웅크리고 앉아 보이지 않는 표정에서 그들의 속마음을 읽는다.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은 진실일 때도 있지만 쉽게 거짓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꾸밈없는 뒷모습
1930년대 초.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한 작은 마을에는 두번째 남편 안토니오를 잃고 귀족 가문의 전통대로 8년 상을 치르는 베르나르다 알바가 살고 있다. 다섯 딸과 정신이 온전치 못한 나이 든 어머니까지 3대가 모여 사는 베르나르다의 집은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가족들에게 극도로 절제된 삶을 요구하는 베르나르다와 억압에 짓눌린 가족들이 있다. 베르나르다의 충신인 듯 행동하지만 이간질을 일삼는 집사 폰시아는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억압과 평온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집에서 첫째 딸 앙구스티아스는 연하의 약혼자 페페
코로나19로 예술계에도 찬바람이 불었다. 기획됐던 다수의 전시회가 취소되거나 온라인 전시회로 대체됐다. 수많은 아트 컬렉터와 화랑,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던 아트페어 역시 마찬가지다. 해마다 가을이면 미술 애호가들은 서울 강남구의 코엑스를 찾았다. 미술품의 도매시장을 연상케 하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가 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KIAF를 포함한 다수의 아트페어가 온라인 뷰잉룸으로 대체됐다. 갤러리조은이 미술 애호가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두달간 연말연시 선물기획전 ‘소품락희小品樂喜’를 연다. 갤
어느 날 몸이 여섯 조각으로 토막난 채 살해당한 여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이 끔찍한 사건의 용의자는 고작 18살의 소년이다. 형사1과 형사2는 소년을 두고 살인 사건이 일어난 날의 정황을 짚어가며 소년의 자백을 들으려 한다. 그들은 소년을 범인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두 형사는 윽박지르기도, 어르기도 하며 소년의 자백을 끌어내려 한다. 관객에게 긴장감을 선사하는 2인극 ‘얼음’이 오는 1월 무대에 오른다. 얼음은 장진 감독 특유의 작가적인 상상력과 이야기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2016년 초연 당시 독특한 내용과 완성도 높은 무
오페라 ‘서민귀족’은 ‘태양왕’으로 불리는 프랑스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은 작곡가 장 바티스타 륄리가 만든 작품이다. 그는 17세기 프랑스에서 인기를 끌었던 ‘코미디 발레’의 창시자다. 코미디 발레는 희극과 발레를 결합한 형식으로 ‘오페라 발레’라고도 불린다.♬ 1막 = 프랑스 주르댕의 집. 주르댕은 돈이 매우 많지만 귀족이 아니다. 귀족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주르댕은 음악·무용·검술(펜싱)·철학 등 귀족 문화의 전문가를 고용해 귀족처럼 되려고 노력한다. 주르댕의 음악선생과 무용선생이 등장한다. 귀족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주르댕
영국의 시골 도시, 작은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그렸다. 물감 자국이 두껍게 굳은 신문지 뭉치, 수북하게 쌓인 페인트통….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림을 그렸지만 그의 이름이 알려진 건 70세가 넘어서였다. ‘할머니 화가’ 로즈 와일리(Rose Wylie)가 영국 일간지 가디언지의 ‘영국에서 가장 핫한 작가’로 선정됐을 때 그의 나이는 76세였다. 최고령 신진작가로 영국을 단숨에 사로잡은 그는 이후 세계 3대 갤러리인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의 전속작가로 등극했다.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로즈 와일리는 여전히 소녀 같
미국의 졸업 문화를 모르면 ‘더 프롬(The Prom)’이라는 제목부터 이해하기 힘들다. ‘프롬’은 고등학교 졸업을 기념하면서 여는 댄스파티다. 미국인들은 이 졸업파티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학교생활을 한 후에 맞는 마지막 파티라는 의미가 있어서다. 강제적인 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룰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파트너를 데려와야 한다는 거다. 남녀 한쌍이 원칙이다. 상대는 동급생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상급생과 하급생은 물론 졸업생이나 외부사람도 된다. 그런데 인디애나주에 사는 여학생 엠마는 프롬 파트너로 남
1986년. 슬럼프에 빠진 천재 피아니스트 ‘스티븐 호프만’은 미국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건너온다. 스티븐은 쉴러 교수를 만날 것을 기대하며 리허설 스튜디오 315호로 들어서지만 그곳에 있던 사람은 쉴러 교수가 아닌 괴짜 교수 ‘요제프 마쉬칸’이었다. 마쉬칸은 스티븐에게 ‘쉴러 교수를 만나려면 3개월간 나에게 먼저 노래를 배워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한다.거만한 젊은 피아니스트 ‘스티븐 호프만’과 익살스럽고 유쾌한 ‘요제프 마쉬칸’은 살아온 배경도 성격도, 예술적 성향도 다르지만 성악 수업을 통해 가까워진다. 음악으로 만나 나이를 뛰
사물의 모양과 크기는 인체를 근거로 결정된다. 기능과 효율을 목적으로 디자인한 사물이라고 해도 이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반대로 우리의 생활방식은 사물의 기능에 맞춰 움직인다. 기성품은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또는 디자인을 위한 결과물이다. 이렇듯 인체는 사물의 디자인에 표준을 부여했고, 규격화된 사물은 인체의 움직임을 고착시키고 있다.다수의 전시를 기획해온 윤민화 큐레이터와 기성품이 조각이 되는 가능성을 탐구해온 최태훈 작가가 페리지갤러리의 ‘페리지 팀프로젝트’로 만났다. 두 사람은 지난 1년 ‘트랙터(tractor)’라는
5·16 군사정변과 유신체제에 있던 1970년대는 젊은 예술가들에게도 억압의 시간이었다. 일부 개방된 문호를 통해 국제미술의 실험적 미술경향을 접할 순 있었지만 실험적인 작업과 전시들엔 어김없이 제재가 가해졌다. 공인된 무대에 설 수 있는 건 추상미술뿐이었고 모노톤의 단색화가 주를 이뤘다. 당시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활동을 시작한 최병소 작가 역시 시대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예술가들의 실험정신만은 잃지 않으려 했다. 단색화와 실험미술 사이에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쌓아나갔다.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 사진을 이용해 작업한 ‘
우수사원이자 7년 차 직장인 ‘정은’은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받는다. 정은이 퇴사를 거부하자 회사는 전기 송신탑 수리 하청업체에 1년간 파견 가면 복귀시켜 준다고 제안한다. 잘리고 싶지 않은 정은은 이를 승낙한다. 하청업체에 간 정은은 자신의 역할을 찾으려 하지만 만만치 않다. 현장 일은 낯설고, 하청업체 사람들은 정은을 적대시한다. 정은은 어떻게든 1년을 채워 원청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틴다. 각박한 환경에서 정은에게 손을 내미는 건 ‘막내’뿐이다. 그 또한 잘릴 처지지만 막내는 정은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영화 ‘나는 나를
로맨틱 코미디 속 주인공이 재난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 될까. 극단 신세계가 두번째로 선보이는 상업무지無知컬 ‘사랑의 오로라’를 초연한다. 2015년 극단 신세계의 첫번째 뮤지컬인 ‘두근두근 내사랑’이 관객들이 다시 보고 싶은 극단 신세계의 공연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게 ‘사랑의 오로라’ 제작의 발판이 됐다. 뮤지컬에 ‘무지’한 극단 신세계 단원들의 춤과 노래로 채워지는 ‘사랑의 오로라’는 상업 드라마에서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서사를 유쾌하게 비튼 작품이다.일반적인 로맨스 코미디처럼 흘러가던 뮤지컬은 어느 순간 예측할 수 없는
한 해의 끝, 흥겨움과 기대감이 가득한 크리스마스이브. 우애 깊은 4남매는 크리스마스이브 파티를 위해 어머니의 집에 모두 모인다. 4남매에겐 각각의 사정이 있다. 장남 ‘장피에르’는 아버지의 죽음 후 어머니와 동생까지 돌보는 성공한 세일즈맨이다. 우연히 첫사랑 ‘헬레나’의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배우를 꿈꾸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무기력함에 빠진다. 작가 지망생인 둘째 ‘쥘리에트’는 40세에 첫 임신을 하곤 들뜬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소심한 성격의 셋째 ‘마티유’는 직장 동료를 열렬히 짝사랑하고 있지만 고백조차 못하고 있다. 막내
3D프로그램이나 포토샵 작업을 할 때 ‘새로고침(F5)’ 버튼을 누르면 이미지가 쉽게 지워지거나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온다. 지우개는 마치 가상공간의 ‘새로고침’ 버튼과도 같다. 틀린 것을 고칠 수 있고, 새로운 걸 그리거나 쓸 수도 있다. 홍지연 작가는 연필로 첨삭을 하고, 지우개로 지우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의 아이러니와 부조리를 말한다. “우리는 그것을 왜 부정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Eraser’ 시리즈와 ‘Pencil’은 시네마4D(Cinema 4D)라는 3D프로그램을 사용해 실제 사물을
‘피터’는 며칠 후면 집에서 사랑하는 할아버지 ‘에드’와 함께 살 수 있다는 점에 즐거워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할아버지가 온다는 건 자신의 방을 뺏긴다는 뜻이라는 걸 깨닫는다. 에드를 사랑하지만 소중한 방도 지키고 싶은 피터는 전쟁을 벌여 되찾기로 결심한다. 위풍당당하게 ‘전쟁 선언문’을 보낸 피터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가며 에드를 위협한다. 금방 되찾을 거란 피터의 기대와는 달리, 에드는 만만치 않은 상대다. 에드는 손자에게 방을 돌려주긴커녕 반격에 나선다.하나뿐인 방을 지키기 위한 할아버지와 손자의 불꽃 튀는 전쟁을 담은 영
586세대는 소위 말하는 민주화 세대다. 부정한 정치권력을 뒤엎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세대이기도 하다. 자본권력이 정치권력보다 우위에 있는 세상을 마주한 이들이다. 현실과 신념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같은 시기를 겪은 이들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연극 ‘당신이 밤을 건너올 때’는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자신이 지켜온 가치와 신념을 두고 고민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작품은 간단하지만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이번 작품은 유혜율 작가의
직관적이면서도 강렬한 필체를 화폭에 담아 온 권순철 작가가 4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흔적(Trace)’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선 지난 50년 한국인의 삶과 역사에 관여했던 사건과 인물을 형상화한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오랜 시간 한국의 산과 강, 한국인의 얼굴을 반복적인 덧칠로 표현해왔다. 겹겹이 쌓인 오일페인트로 탄생한 얼굴은 누군가의 얼굴이 됐다가 모두의 얼굴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흔적 같기도 하다. 작가는 사라져가는 형상들의 흔적을 남기며 그들의 존재를 생각하고, 또 기억한다. 제1전시장에선 한국전쟁과 분단
소설가 김훈은 원고지에 연필을 꾹꾹 눌러 글을 쓴다. 건축가 승효상은 그의 건축철학이 시작된 수졸당의 건축 설계도를 연필로 완성했다. 화가 김학량은 농사를 천직으로 알던 부모님이 평생 사용해온 농기구를 연필로 쓱 그렸다. 사진작가 김수강은 검 프린팅(Gum Bichromate Printing) 기법으로 연필에 독특한 존재감을 부여했고, 화가 김은주는 연필의 선을 켜켜이 쌓아 검은 꽃을 피웠다. 영국 출신의 사진작가 알란 에글린턴(Alan Eglinton)에게 연필은 사랑이다. 그는 연필로 한국어를 습작해 사랑하는 이에게 청혼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