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장류처럼 긴 팔을 사랑해
악수握手의 길이는 긴 팔이 알고 있을 거야
넌 등을 만지는 방법을 알고 있니?
너의 팔은 점점 자랄 텐데
그 팔을 늘리려면 끊임없이 경계해야만 해
온기가 말초에 다다를수록
검붉은 목 젓이 오르락 내리락
길어지고 빨개진 너의 목을 안고
자, 이제 꼬리를 잘랐으니
너의 팔이 툭! 하고 날 치면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높여 회개할거야
내 죄를 사해달라고
지난 밤 팔이 늘어난 영장류들이
넓적한 맨홀 뚜껑에 이마를 박고
둥그런 가장자리를 물씬 두들겼어
아마 급하게 손끝을 구부려 버렸나봐
내 손이 닿은 너의 등뼈는
펑펑 울고 있겠지
버드나무와 용감한 늪과
넓은 모래밭이 있는 곳으로 가자
조개와 물새와 잇새가
부푼 내 뱃속을 휘저으면
한껏 불어난 날개가 너의 팔이라고 착각할게
모래가 저희들 사이로 몸을 숨기듯
긴 팔을 한걸음 떼고 있겠지
너의 척추가 하나 둘 벌어지는 순간으로
팔꿈치를 구겨 넣을 거야
시작노트-
품.
나에게는 식물과 동물의 부위들이 자란다. 5월의 오솔길과 말더듬이바람이 만드는 식물의 부위는 털썩 주저앉거나 머리칼을 삐쭉거리며 여전히 진행 중이고 포효의 울음과 젖내가 만드는 동물의 부위는 한껏 무릎을 굽혔다 펴기를 반복하며 여전히 뜀박질 중이다.
진화하는 나의 곳곳에서는 소리가 난다. 늘어난 인대는 유연柔軟을 계산했고, 흐릿한 동공은 매정을 닦아냈다. 그동안 진화하는 것들은 몸에 인색했으며 미세한 변화의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다. 며칠을, 몇 천 년을 나는 나의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잠시 외출했던 예전의 나는 나의 안으로 다시 들어가지 못했다. 들고 나는 것이 나의 욕망이라면, 희망하는 것들은 나의 곳곳과 매번 조율을 해야 했다. 그러나 늘 상 그렇듯 몽땅 벗어버린 나는 어떤 물음에도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너를 향해 달려가는 일과 네 앞에 멈추는 일의 사이에 관해서, 출발 지점에서부터 너에게 닿는 거리를 계산하고는 내 팔이 길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가까이 갈수록 짧아져야 하겠지만 한 번의 사랑의 역사에도 길어진 나의 팔을 두고 지리멸렬한 추궁이라고 생각했었을까? 그 지리멸렬한 질문의 대답은 바로 너의 등, 등을 보이는 일이었다.
한 번도 안아보지 않은 관계가 있을까. 얼굴에서도 모난 생기가 자란다. 나의 팔은 늘 나를 조율해주었지만 동그랗게 안으면 너의 경치를 빌릴 수도 있었지만 가로로 쭉 뻗으면 나의 낙담을 일으켜줄 수도 있었지만
그때 긴팔원숭이가 머리를 흔들었다. 안을 포抱, 낄 옹擁. 위로하기 위해 너를 안고 원숭이의 진화속도로 긴 팔을 부러워했었다. 그렇게 우리는 등을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너는 왜 그렇게 팔이 긴 거니? 너는 너와 네가 연모戀慕하는 원숭이 사이에서 한없이 늘어지고 싶은 거니? 다정多情을 잡기 위해서, 너는 너의 팔을 늘린 거니? 온전히 상대를 안기 위해서 길어진 팔은 빠져나가기에도 충분한, 헐렁해진 곳이라는 것도 알고는 있니? 연모의 끝은 연모를 빠뜨리는 곳이 된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겠지?
지긋지긋한 애착. 누군가 나의 긴팔을 벗어나면서 긴팔원숭이의 진화에서 빠져나가겠지. 팔이 길수록 우리는 그 먼 거리를 버리고 짧은 거리를 더욱 사랑하게 되지. 지독한 포옹으로 상충하지 못하는 진화,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반만 안기로 결정했었던 건 아닐까. 심장은 엇갈려있고 우리는 절대 정면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 바로 보는 법은 오히려 외면을 불러온다는 것을.
이린아 시인
명지대학교 뮤지컬공연전공 졸업
명지대학교 대학원 뮤지컬공연학 재학중
2018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데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