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에서는 8월부터 등단 3년차 미만 신인 시인들의 미발표 신작 시와 시에 관한 짧은 단상, 에세이 등을 연재합니다.
발표 지면이 적어 시 세계를 알리기 힘든 신인 시인들의 데뷔 이후 시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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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토크
담벼락의 안부가 궁금해
사람이라면
한쪽 어깨가 한 뼘쯤 기울어진
쓰러질 것처럼
다가올 것처럼
어깨에서 어깨로 남자는
유리볼을 굴린다
세계를 뒤집고
팔월이라는 이름으로
경쾌하게
구경꾼들 사이로 흘러 다닌다
집중을 하다보면
아무 곳에나 슬픔을 쌓고 있다
지키고 싶은
세계가 한 뼘 더 무너진다

1.
창문 너머 소음을 구분하는 일로 하루가 다 갔다. 서로 다른 높낮이의 소리들을 둥글게 말아서 저글링, 저글링 하면서. 골목길에는 버려진 공들이나 의자가 우두커니 놓여 있다. 이곳저곳을 발길 닿는 데로 돌아다니며 낮게 깔려있는 소리들을 수집하기도 했다. 도시의 소음은 한결같이 폭력적이고, 저항하듯 매미소리가 문득 솟아오른다. 머리 위로 익숙한 소리의 그물이 드리워지면 구멍 틈으로 지나간 여름이 떨어지기도 한다. 공업사 앞에 플라스틱 의자들은 아무렇게나 놓여 거리를 견디고 있다. 골목길에서 노인이 나와 의자 하나를 가로수 그늘로 옮겨와 앉는다. 탁탁 부채질을 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보는 일로 오후를 견딘다.
2.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같은 말을 반복한다. 지금 이곳에 있는 이유와 앞으로 있을 곳에 대해서. 그때마다 이파리를 감추고 있는 씨앗의 기분이 된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언젠가 생겨 날거야, 라고 말하려다 그럴듯한 인과관계를 만들어보기도 한다. 멀리 떠나와도 머릿속을 헤매는 것만 같을 때 뜻밖의 사물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느 여름날 담장 위에 놓아둔 화분 같은 것. 그 길을 지나다니던 동네 고양이에게는 걸림돌이었을지 모를, 그 바람에 떨어져 조각났을 지도 모를 화분. 그렇지만 한 순간 그곳에서 어깨 높이의 안부를 물었다는 사실이 어떤 기억을 소환한다. 그때 우리는 조그만 씨앗이 움켜쥔 생명력을 구하고 싶었던 건지 모른다. 축 늘어진 걸음걸음 위로 연두색 당부를 매달고 싶었는지 모른다.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식물들은 번번이 말라죽었지만. 빈 화분들의 안부를 묻는다. 없는 사람의 안부를 묻는 마음으로.
3.
빗물이 우체통을 쓸어내린다. 그 위로 신호등 불빛이 미끄러진다. 우산을 꼭 쥔 손까지 빗방울이 들이친다. 견고한 돌바닥을 두드리는 빗줄기의 움직임에 내맡겨진 채 보행 신호를 기다린다. 운동화 속까지 점점 빗물은 들이친다. 한 발을 떼고 옮기는 단순한 움직임에 집중을 하며 걷는다. 이 우산 아래의 공간이 유일한 세계인 것과 같은 막막함으로. 익숙한 다짐을 반복하고 일기는 되풀이된다. 견디는 일이 오롯한 일과가 될 때 세계는 급속도로 수축한다. 보이지 않는 이면에 시선을 돌린다. 세계는 잠깐 부풀어 오른다. 불가해 속으로 발길을 옮긴다.
노국희
2016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