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끝나지 않는 이야기, 한강 작가의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 
결코 끝나지 않는 이야기, 한강 작가의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 
  • 박소현
  • 승인 2021.09.17 14:54
  • 댓글 0
  • 조회수 77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한강작가
사진=한강작가

 

아시아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인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장편소설 '흰' 출간 이후 5년 만에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독자들에게 돌아왔다. 이에 한강 작가는 7일 문학동네 유튜브 채널을 통해 출간 기념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고, 그 신작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거침없이 풀어냈다. 

"제주는 아름다운 섬이고 특히 햇빛이 눈부십니다. 그 찬란한 오전에 그 말을 들은 순간의 아득함, 수십 년 전 당시 섬 인구의 십 분의 일인 삼만 명이 살해되었던 사건이 충격적인 실감으로 다가왔던 것을 기억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날의 기억과 그 꿈이 만나면서 쓰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신작은 본래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2015년 황순원문학상 수상)', '작별(2018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을 잇는 '눈 3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구상되었으나, 집필하다보니 자체 완결된 장편소설로 마무리됐다. 

본 작품은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2014년 여름)"를 출간할 무렵 꾸었던 꿈에서 영감을 얻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집필은 2018년 12월에 이르러서야 시작될 수 있었다. 1996년, 제주에서 혼자 지내던 시절 집주인 할머니가 어떤 골목의 담 앞에 멈춰 서서 '여기가 4.3 때 사람들이 총 맞아 죽었던 곳'이라 말했던 기억이 구체적인 모티브가 되었다.

"불과 칠십 년 전에 삼만 명의 민간인들—10세 미만의 아이들을 포함한—이 학살당한 그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 절멸과 혐오의 메커니즘은 긴 역사에 걸쳐, 전 세계에 걸쳐 인간들이 반복해 경험해온 것이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으며 언제나 미래의 가능성으로서 어른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 끈질기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구상 끝에 차근차근 쓰여진 이번 신작은 제주 4.3 사건에 대해 다뤘다. 이 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무려 7년 7개월에 걸쳐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이 수없이 희생당한 우리의 슬픈 역사다.

한강 작가에 따르면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들, 특히 제노사이드와 같은 일들은 과거의 것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그 일들이 스스로 인간의 본성에 대해 묻기 때문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 질문을 더듬어 사건 당시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절멸’의 시도를 들여다보았다. 

사진=한강작가
사진=한강작가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中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처음엔 '경하'인 것 같았다가, '인선'인 것 같았다가, 결국 '정심'으로 귀결된다. 인간은 어떻게 인간일 수 있을까? 작품 속에서 희생자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워낸 의지의 행위자 '정심'은 그 답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정심에 대해 쓰면서 이 소설은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느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인간일 수 있는지, 사랑이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 아닌지 이즈음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읽고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저에게는 가장 기쁜 일이겠습니다"

또 '작별하지 않는다'란 제목의 의미에 대해 한강 작가는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라고 말했다. 그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는 각오. 그것이 사랑이든 외도든 끝내지 않은 채 끝까지 끌어안고 계속 나아가겠다는 결의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학살 이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생존자의 길고 고요한 투쟁의 서사가 있다. 폭력에 훼손되고 공포에 짓눌려도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다. 작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딸의 눈과 입을 통해 전해진다. 폭력은 육체의 절멸을 기도하지만 기억은 육체 없이 영원하다. 죽은 이를 살려낼 순 없지만 죽음을 계속 살아있게 할 수는 있다. 작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라 설명하기도 했다.

지난달 30일부터 예약 판매를 시작한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미 초판 양장 한정판이 매진되었고, 동네책방에디션도 선주문이 많아 추가 제작하는 등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편, 한강 작가는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서 시 '서울의 겨울' 외 4편을 발표하고, 그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흰'과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그리고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을 출간했다. 

특히 한강 작가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인터내셔널 부커상, 말라파르테 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산클레멘테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노르웨이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 참여 작가로 선정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