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악습-류휘석
[특집] 악습-류휘석
  • 편집 담당 이민우
  • 승인 2022.02.2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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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습

-류휘석


선생은 장작을 구해 오지 않았다
더는 아무도 사냥꾼을 찾지 않았다

나는 조악하게 깎은 나무 식기를 정리하다가 바닥에 내팽개쳐진 선생의 털옷을 주웠다 선생이 몰고 온 조그마한 겨울이 날카롭게 살을 아렸다 나는 흰 산처럼 두툼해진 선생의 털옷을 불 꺼진 난로 앞에 가져가 털어냈다 

아주 천천히 
온 세상을 집어삼킬 것 같던 눈 더미가 작은 손에 밀려 형편없이 바스러졌다

선생은 난로 앞 의자에 앉아 헤진 그물을 꿰었다 어지럽게 얽힌 선생의 낡고 거대한 손 두터운 손주름을 말아 쥐고 제 몸보다 큰 것들을 밀어내던 선생의 손 나는 선생이 선생을 꿰어내는 광경을 가만히 보았다

아주 거대해서 끊어지지 않는 그물을 가지고 싶어 선생이 매일 힘들지 않게… 아니 사실은, 바깥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어 역시 어렵겠지 그건… 그러니까 끊어지지 않는 쪽 말이야 

선생은 다 꿰어진 그물을 천장에 매달고 여러 번 당겨 보았다 의자 위에 올라가 바닥을 한참 내려다보기도 했다 힘 풀린 눈가가 통째로 쏟아져 갈라진 나무 바닥을 모조리 부술 것 같았다

선생, 너무 어려우면 작은 목줄 같은 건 어때 숨이 조금 막혀도 괜찮을 것 같은데 따뜻한 수프를 끓여주고 뜨거우니 천천히 먹으라고… 가끔 잘했다고 말해주면 정말 괜찮을 것 같은데…

둥지를 잃은 어린 새의 추락예행연습처럼 선생은 양팔을 휘젓기도 하고 가슴께를 툭툭 치기도 했다 나는 선생의 어떤 것이 결연해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곧 불이 꺼질 것 같았고 으레 그 징후를 포착하면 털옷을 걸친 채 뒤뜰 창고에 나가 마른 장작을 꺼내오던 선생은 더 이상 아무것도 걸치지 않기로 다짐한 것 같았다 모든 걸 벗은 형태가 아닌 모든 걸 더는 걸치지 않는

선생은 거대한 투명 비닐 같았다

나는 선생의 의자 근처에 선생의 털옷을 가져다 놓았다

그런 건 없겠지 선생 
이 세상에 버려지지 않는 건 

나는 선생을 볼 자신이 없었다 사실 
더는 선생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치?

창밖의 눈은 여전히 거세게 몰아치고

듣고 있어?

대답 없이
불이 사그라들고

아주 오래 

희고 밝은 눈은 꺼지지 않았다

눈이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이 집과 우리를 태울 힘이 없어

그런 건 가르쳐주지도 않았잖아

그래 모든 건 선생 탓이야

무책임하게

거대해진 밤이 눈을 삼켜 
가끔 유리가 스스로 빛나는 일 말고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작노트

나는 여러 번 배우고 익혔으나, 누구도 가르쳐준 적 없다. 책임을 묻기엔 너무 커버렸고, 탓한다는 생각조차 억압받았다. 살아남았으니 됐지. 그렇게 생각하고 침대에 누우면 불을 꺼도 천장이 너무 환했다. 이대로 눈 감으면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종종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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