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자취-한소리
[특집] 자취-한소리
  • 편집담당 이민우
  • 승인 2022.02.2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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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

-한소리


오피스텔을 빌려 처음으로 밖에 살았다. 원하는 방식으로 방을 계획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항목들로 채울 수도 있었다. 나는 암막 커튼이었다가 액자 프레임. 구석에는 납작하게 엎드린 고양이. 

올해 제사는 숨죽여 지나갔다. 말다툼도 안 했다.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날리는 세상은 얼마나 우스꽝스럽나? 고통은 연결되어 있지 않고, 나는 가족을 만족시킬 만큼 용감하지 않다. 익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는 과일은 없나. 턱 아래로 복승아 즙이 흐른다. 

냉장고 불빛, 썩은 과일, 가득 쌓인 술. 앞집 사람이 또 파티를 열었지만 나는 초대받지 못했다. 누군가 술에 취해 옆집 현관문을 때리고 있었다.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고 나를 불러내길 바랐지만, 신고를 받은 경비원이 방금 그를 데려갔다.

화장실 모서리를 닦는 스펀지 같은 마음. 지우기 위해 자세하게 만져야 하는 얼룩. 변기는 어제도 막히고 오늘도 막혔다. 반으로 자른 페트병 주둥이를 잡고, 구멍을 들쑤신다. 차오르는 물. 얼굴에 튀는 물.

오늘 밤 불면증. 옳고 그름이 잠과 함께 떠났다. 구속도 없었고 작별 인사도 없었다. 고양이가 새로 산 안경테를 밟아 부러트렸지만 우는 건 내가 아니고 고양이. 늦은 밤에만 만날 수 있는 장소에서 나를 부르지 말아줘. 달려간다. 장난감 터널 속으로.

 

<시작 노트>

나는 용감하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되곤 한다. 

편집담당 이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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