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동화 마녀빵집 출간 인터뷰. 차별과 선입견에 대하여
[인터뷰] 동화 마녀빵집 출간 인터뷰. 차별과 선입견에 대하여
  • 이승석
  • 승인 2022.03.1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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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송희 에디터
사진= 한송희 에디터

 


도서출판 꿈터가 지난 2월 21일 글 작가 강이윤슬, 그림 작가 김이주의 동화 <마녀빵집>을 출간했다.

강이윤슬 글 작가는 단편 동화 〈날아라, 민들레〉로 동서문학상 맥심상을 받았다. 마녀빵집은 작가의 첫 책이다. 김이주 그림 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 <에너지를 지켜라!>, <들림아, 할 수 있어!>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마녀빵집의 주인공 주희는 마녀처럼 생긴 할머니의 외모 때문에 반 친구들로부터 마녀라고 불리며 따돌림을 당한다. 빵집을 운영하는 주희 할머니의 빵은 동네에서 맛있기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이를 시기한 주희의 반 친구 채연의 아빠는 주희 할머니의 빵과 똑같은 모양의 빵을 만들고 상한 요구르트를 겉에 발라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어 주희 할머니의 평판을 깎아내려고 한다. 빵을 먹고 배탈이 난 아이들은 마녀의 짓이라며 주희와 할머니를 마을에서 내쫒으려고 한다.

잘못된 소문과 편견으로 마음에 상처가 있는 주인공 주희가 사실이 아닌 헛소문으로 고통받으며 따돌림을 당하는 이야기의 마녀빵집은, 헛소문과 진실, 왕따 문제에 대해 ‘마녀’와 ‘빵’이라는 소재로 흥미로우면서도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가 미국에서 확산되기 시작되던 지난 2020년 아시아인들을 상대로 있었던 혐오범죄들,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이로 인해 벌어진 BLM 운동은, 외모로 인한 편견과 선입견, 차별이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닌 어른들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강이윤슬 작가는 뉴스페이퍼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세계는 미움과 혐오가 가득한 것 같다”며, “우리가 다름을 넘어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다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다음은 강이윤슬 작가와 뉴스페이퍼의 인터뷰 전문이다.

1. 마녀의 짓처럼 누군가를 ㅇㅇ 로 만들어 내는 일이 현실 세계에도 많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동화라기보다는 현실의 모습인 거 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마녀 빵집을 쓰게 된 계기나 혹은 상상력의 원본이 된 경험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삶에서는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알고 보면 매력이 있는 멋진 사람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2학년 때였나 같은 반에 별명이 ‘임꺽정’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여자애였는데 굉장히 목소리가 크고 머리가 짧고 힘이 세서 남자애 같다고들 했습니다. 그 애는 굉장히 활동적이었는데, 가끔은 의도치 않게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문제아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저와 많이 다른 그 친구가 불편했는데, 알고 보니 집이 근처라 하교를 하며 마주치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알아가고 나니, 그 친구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어요. 목소리가 크지만, 일부러 싸움을 걸고 다닌다거나 폭력적인 것은 아니었고, 쉽게 흥분하는 것 같지만 그게 화를 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에너지가 넘치고 목소리와 동작이 큰 친구였어요. 그 친구도 조금씩 변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 역시 첫인상과는 다르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합니다. 조용한 것 같지만 친해지고 나면 그렇지 않다, 차가울 것 같은데 알고 보면 특이하다 등 첫인상에 관한 이야기는 가지각색입니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누군가에게 오해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게 자기 자신의 모습이 아닌데 안 좋은 것으로 오해를 받으면 기분이 몹시 불쾌하고 억울합니다. 해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땐 오해가 쌓이고 풀지 못해서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고요. 누군가가 저를 오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억울했지만 그 당시에는 바로 오해를 풀 용기가 없었습니다. 저는 겁쟁이라 그 상황이 겁나고 무서워서, 나를 오해하는 이들과 마주하려 하지 않고 도망치기 급급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마치 그들의 말대로 제가 그들이 오해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매우 속이 상했습니다. 제게는 그들에 대해 원망과 상황이 그렇게 된 데 대한 속상한 마음이 앙금처럼 남아, 마음이 병든 것처럼 매우 아팠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들에게 저는 그런 이가 아니라고 제대로 말하지 못한 자신이 몹시 부끄럽고 한심했습니다.

솔직히 누가 나 대신에 나서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면 좋으련만 하는 약한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살면서 많은 경우 자기 입장을 제대로 대변해줄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제가 스스로 나서서 적극적으로 오해를 밝히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해를 푸는 길은, 때론 험난하기도 하고 매번 오해가 쉬이 풀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오해였다는 것을 서로 알게 되고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을 때 새로운 지평이 펼쳐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사라지고 난 후에는 마음이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내게 다소 놀라움과 충격은 주었을지언정, 상처로까지 남지는 않았지요.

제 삶의 이런 경험들로 인해 제가 <마녀 빵집>에 다다르게 된 것 같습니다.


2. 소문과 편견에 대한 상처는 모두에게 깊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 많은 것 같은데요.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셨는지요?

사람들은 각자 무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판단을 내립니다. 살아온 삶의 궤적과 환경 등에 따라서 가치 판단 기준과 소위 상식이라는 것이 다 다르지요. 그래서 자신의 판단 기준에 따라서 상대를 판단하고 때로는, 아니 곧잘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오해를 푸는 건 쉽지 않습니다. 안 좋은 이미지가 일단 굳어지고 나면, 사람들은 그게 사실인지 확인하지 않고 그렇게 믿어버리기 마련이니까요.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알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이거든요. 그렇지만, 그런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그 사람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영영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멋진 사람이나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때 매우 가슴이 뛰고 행복해집니다. 멋진 이를 보고 만날 거라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설렙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사는 이 세상에 멋진 사람이 많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요? 멋진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게 될 때마다 기분이 좋고, 하루하루 신나는 날들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쉬운 것 같지만 굉장히 힘들고 지치는 일입니다. 마음속에 뾰족뾰족 가시가 돋아나서 괴롭습니다. 미워하는 건 쉬운 것 같지만 싫어하는 게 많아지면 그것을 미워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자기 자신도 괴물이 되는 것 같아 행복해질 수가 없는 듯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의 멋진 면을 발견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사람들은 모두 자신과 다르니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모두 만족할 수 없고, 각자 장단점이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진정한 인간다움이라는 것은 흠결이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소문과 편견으로 상처를 받은 분들에게는 절대 그 잘못된 소문과 편견에 자기 자신을 맡기지 말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본질을 알 수는 없기에 때론 오해하고 상처받게 되겠지만, 소문과 편견이 본인을 규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인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이 규정하는 것에 얽매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절대 남들이 자신의 인생을 휘두르고 결정하게 두지 마세요. 자기 자신을 아껴주고, 다독여주세요. 지금 주변에 바로 곁에 없는 것 같아도, 어딘가에는 본인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 희망을 잃지 말고, 마음을 닫지 마세요. 진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언젠가, 어디에선가 꼭 만나기 마련이니까요. 상처를 딛고 일어서 진정 행복한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빕니다. 그리고 소문과 편견이 틀렸다는 것을 그것을 믿었던 사람들에게 당당히 보여주세요.


3. 이외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편하게 부탁드립니다.

대학원을 다닐 때 교수님께서 인간은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는 서사적인 존재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바뀐 듯합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해도 사람들은 각자 살아온 삶의 방식과 환경이 있고 그것이 그 사람의 세계를 이룹니다. 한 사람은 각각 하나의 우주이고, 인간 모두는 각자의 사연이 있는 서사적인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각자 다른 이유가 있고, 다른 게 당연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다르다는 것은 많은 불편을 초래합니다. 요새 유행하는 MBTI만 보더라도 각각 반대되는 형질끼리 서로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하지만 그게 잘못된 걸까요?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해서 내가 잘못된 걸까요? 나와 반대되는 성질의 사람의 눈엔 내가 이상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내 눈엔 그 사람이 나와 다른 게 신기하고 그렇게 보이겠지요.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란 없습니다. 각자 다른 맥락과 다양한 가치가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곧잘 이에 대해서 잊곤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잘못된 이라며 비난하고 몰아세우고 갈등하게 되면 서로를 도와 함께 이룰 수 있는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비단 그 사람의 실패가 아니라 내 쪽에도 실패이며, 불이익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결국 자기를 괴롭히고 괴물로 만듭니다. 괴물을 상대하다 보면 괴물이 되어간다고 하지요. 상대를 괴물로 보고, 괴물로 대하기에 자기 자신도 그렇게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사람은 그저 나와 다른, 그 사람만의 아픔과 사연이 있는 또 다른 인간일 지도 모릅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음이든 무언가의 이유로 떠나보내고, 실패도 하고, 그래서 좌절도 합니다. 그럴 때 혼자 이겨내는 것은 힘이 들지요. 옆에 있는 사람들을 의지하고 도움을 받는 게 생각보다 큰 힘이 되어줍니다. 그러니 서로를 상처 주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미움을 줄여 행복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의 삶은 생로병사라고들 합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병도 들고 늙고 죽습니다. 이 과정에서 누구나 어린이, 병자, 노인 등 사회적 약자가 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세계적 대유행 병을 경험하면서 누구나, 언제든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특히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그 자리에 그들을 위한 조금의 배려 대신 편리함이라는 이유로 ‘노ㅇㅇ존’을 만들고, ‘ㅇㅇ충’이라며 그들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차가워지면서 기분이 몹시 참담해집니다.

우리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사는 존재들로, 누구 하나 100% 자급자족해서 살기 힘든 존재입니다. 게다가 인생이란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모든 걸 가진 것 같다가도 죽을병에 걸리기도 하고, 자연재해 등으로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누구든 약자가 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쓸모와 기능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아프면, 힘이 약하면 무시당해도 되고, 존재의 가치가 없는 걸까요?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기계가 대체할 수 있는 게 늘어나면서 인간에 대한 관점 역시 기능적으로 완전함을 바라기보다는,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인가 생각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 즉 동정심이 있을 때 다툼과 미움은 줄어든다고 합니다. 동정심은 꼭 타고 나야지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덴마크에서는 초등학교 시절 동정심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것은 다른 입장이 되어보는 좋은 연습이 됩니다. 단어와 수학 공식을 아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사람은 평생 성장하는 존재이고, 그렇기에 생에는 배움에 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책은 평생 좋은 벗이 되어 사람을 좋은 길로 인도하고 지켜주리라고 믿습니다.

요즘 세계는 미움과 혐오가 가득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혐오를 조장하여 돈을 벌기도 하고, 이익을 얻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자극적인 것들에 쉬이 끌리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혐오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혐오는 칼로 된 부메랑 같아서 누군가를 해치는 범죄 등을 낳습니다. 그 범죄의 희생양은 자신이 될 수 있고, 주변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을 겪게 되면 마음에 큰 상처가 남게 되겠지요.

그러니 쉬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혐오하는데 동조하지 않길 바랍니다. 미움이 마음에 자리 잡으면, 행복은 그만큼 멀어집니다. 우리가 다름을 넘어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다면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들의 마음이 선한 것들로 채워져,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이 마음에 좋은 것들을 가까이하며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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