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며느리에게 있어 ‘시어머니’라는 단어는 스트레스 유발 버튼일 것이다.
“가끔 청소하고 갈 테니 현관문 번호 좀 알려달라”라는 골 때리는 요구는 그저 시작일 뿐이다. 조심스럽게 돌려 거절해보지만 “남도 아닌데 뭐가 어때서?”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대참사를 어찌어찌 피한다 해도, 시어머니가 집으로 찾아오는 건 막을 수가 없다. 바리바리 싸들고 온 냄새묵은 음식이 가득한 비닐봉지를 현관에 내려놓은 뒤에 이어지는 건 집안살림 평가다.
주방과 냉장고를 들쑤셔놓으며 “여기 먼지가 있네”,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사니?”, “대체 뭘 먹고 사는 거니?”라며 지나가듯 중얼거리는 행태는, 이미 시어머니라는 캐릭터의 클리셰다.(그리고 가장 현실적이기도 하다)
어떤 며느리들은 ‘같은 여자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당신도 며느리였던 때가 있지 않느냐’ 라고 투덜거린다. 적지 않은 시어머니들이 며느리를 ‘아들을 빼앗아 간 여자’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팽배하다. 그런 귀한 아들을 데려간 며느리란 존재가 결코 곱지는 않을 것이다.
그 보금자리에 조그만 흠결이라도 보인다 치면, “내 아들을 빼앗아가 놓고도 이 따위로 대한단 말인가!”라는 지나친 모정이 발동되며 잔소리 스위치가 ON으로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더더군다나 며느리들의 짜증을 유발하는 건, 시어머니에 대한 남편의 태도다.
“아, 엄마 왜 그래~” 라고 한 소리를 하지만, 막상 아내에게는 ‘자기가 좀 참아’ 라며 물러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절대 다수이다.
가장의 의무에는 자신의 아내를 지키는 것도 포함된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극성에서 자신을 지켜주지 못할 망정, 되려 회피해 버리고 모든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며느리들의 입장은 얼마나 서러울 것인가.
이렇게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고부갈등을 다루며, 시어머니는 상기한 대로의 클리셰를 가지며 반동 혹은 악역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상상의 세계에선 다른 법이다.

▶ 이거 시월드 맞나... “왜 이러세요, 시어머니?”
결혼한 언니들에게 시월드의 공포를 주입받아 온 열여섯 살 소녀 ‘일라엔’은, 자신을 고아라고 소개한 ‘아헨’과 결혼한다. 신혼집은 비록 비좁고 더러웠지만, 일라엔은 최소한 자신을 괴롭힐 시어머니나 시누이들이 없으니, 그럭저럭 만족하고 거위나 키우며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날, 남편 아헨의 어머니가 난데없이 찾아온다. 고아라는 아헨의 말은 전부 거짓이었고, 어마무시한 재력을 과시하는 제국 최고의 대마법사 ‘카네시스 코르네아’가 바로 그녀의 시어머니였던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시어머니는 일라엔에게 앙칼지게 소리친다.
“꼴이 이게 뭐야? 당장 나가지 못해?!”
그렇게 판잣집에 살던 일라엔이 쫓겨나 도착한 곳은, 으리으리한 성채와 온갖 귀한 향유가 담긴 거품 욕조, 그리고 고급진 요리로 가득한 식탁이었다.
“내 집에서 내보내야 할 게 있네.”
초라한 꼴로 음식을 씹는 일라엔을 바라보던 시어머니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 아이에게 안 어울리는 이 싸구려 옷들 당장 가져다 버려.”
“그리고 마앙뜨엘 의상실에 연락 넣어서 당장 튀어나오라고 해.”
채주아 작가의 장편소설 「왜 이러세요, 시어머니?」는, 누구나 한 번쯤 꿈꿨을 이상적인 시어머니 상을 그린다.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갔지만, 남편이 숨기고 있었던 출생의 비밀이라는 기연을 통해 공포의 대상이던 시어머니를 만난다.
처음에는 제국 최고의 마법사 시어머니라는, 너무나도 거대한 존재에 움츠리던 주인공은, 그 시어머니를 통해 단숨에 팔자를 고친다.
거기에 그녀 자신이 가진 성정으로 주변에게도 인정받으며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전형적인 힐링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다.

▶ 이 남편 뭔가 이상해. 「전 그냥 내 집 마련이 꿈인데요」
“나는 가족과 연인에게 돈이나 퍼 주는 멍청한 호구였다.”
주인공 이샤엘의 독백대로였다. 그녀는 번 돈을 가족에게도 퍼다 주고, 자신을 못 생겼다고 구박하며 바람이나 피워대는 남자친구 페드로에게도 용돈을 챙겨주고, 심지어 논문까지 대필해주는 ‘호구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워커홀릭으로 살던 ‘윤세진’이 그녀에게 빙의하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자신을 호구처럼 대하던 남자친구의 얼굴에 커피를 뿌리며 이별을 선언하고, 황궁 행정관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독립을 준비한다. 그러나 관사에서 곧 나가야 할 사건이 생겨버린다.
본가에 돌아가기는 죽기보다도 싫다. 그러나 죄다 퍼주느라 모아둔 돈이 없다.
좌절하던 그녀에게, 결혼을 하면 ‘신혼부부 타운’에 입주할 수 있다는 소식이 들어온다. 그러나 남은 시간은 3일. 그 3일 동안 어떻게 결혼을 할 것인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녀 앞에 나타난 황실 최고의 미남 기사 ‘딜런’과 얼떨결에 결혼하게 되며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청소는 미리 다 했습니다.”
“쉐이크 만들었습니다. 점심 거르지 마십시오.”
“가볍게 저녁 차려놨습니다.”
가볍게 차려놓은 저녁 식사가 50첩 반상인 수상한 남자 딜런은 대체 누구인가.
거기에 딜런이 갖고 있었던 출생의 비밀이 그녀를 한번 더 놀라게 하는데.
여로은 작가의 「전 그냥 내 집 마련이 꿈인데요」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지만, 독자들에게 사이다 힐링을 안겨주는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다.

▶ 남주들이 엑스트라인 나에게 집착한다? 「가출했더니 역하렘이 시작됐다」
보통 책빙의물의 플롯은 이렇다.
어떤 소설 혹은 만화를 읽고 있던 독자 입장인 ‘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책 속의 세계에 빙의한다.
빙의 대상이 주인공이든 조연이든, ‘나’는 책 속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있으며, 살아남거나 혹은 원작보다도 더욱 성공하거나, 나만의 이야기를 펼쳐 나가거나 하는 플롯이 일반적이다.
오디열매 작가의 「가출했더니 역하렘이 시작됐다」 역시 비슷한 플롯을 가진다. 자신이 읽던 소설로 빙의한 주인공은, 조연도 못 되는 X번 엑스트라 ‘로지에타 젠슨’으로 빙의한 자신을 자각하며 밑바닥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이상했다. 원작대로라면 분명 화려한 여주인공에게 들러붙어야 할 남자 주연들이, 보육원을 뛰쳐나와 온갖 고생을 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달라붙고 있었다.
「가출했더니 역하렘이 시작됐다」 금의환향을 한 세 명의 남자 주인공들 사이에서 둘러쌓여 살아가는 ‘나’-로지에타 젠슨을 대상으로 하는 역(逆) 하렘물이다. 여주인공 한 명을 두고 벌어지는 남자 주인공들의 알력 다툼과, 그 사이에서도 당당히 고개를 쳐드는 로지에타의 모습이 묘미이다.

▶ 이혼했더니 미친놈들이 꼬여버렸다! 「이혼했는데 왜 집착하세요?」
퇴근길에 트럭에 치어 죽은 ‘나’는, 책 속의 인물인 ‘노아’ 백작과 정략 결혼을 한 남작 영애 ‘솔리아 로튼’로 빙의한다. 그것도 무려 일곱 번이나.
“또 빙의했어, 씨X!”
그렇게 빙의를 반복하던 와중, 노아 백작이 죽으면 그녀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알아낸 그녀가 세운 인생 계획은 이러했다.
노아가 무사할 수 있도록 빚도 없애주고 이혼을 한다. 그리고 자유로워진 몸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이혼했으니 나와 재혼해 줘요, 솔리아.”
나름 완벽한 이혼이라고 자찬하며 저택을 나선 그녀에게, 전남편의 집착이 시작되었다.
연비 작가의 「이혼했는데 왜 집착하세요?」는, 막나간다고 생각될만큼 성격이 비뚤어진 남자들이 이곳저곳에서 집착을 해 오는 역하렘물의 플롯을 따라간다. 그러나 집착물이라는 무거운 장르가 아닌, 여주인공의 시원시원한 성격과 어울리는 로맨스 코미디로써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모든 작품들은 ‘카카오페이지’에서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