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어(母語)로 시 쓰기: 비니사야어(Binísayâ)로 하는 문학예술 활동
나의 모어(母語)로 시 쓰기: 비니사야어(Binísayâ)로 하는 문학예술 활동
  • 마르조리에 에바스코 페르니아
  • 승인 2022.11.01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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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 세부아노 비니사야(Binísayâ)어와 영어로 시와 수필을 쓴다. 2010년 동남아시아 작가상(SEAWrite), 2011년 필리핀 국립문화예술위원회 애니 당갈상(Ani ng Dangal) 등을 수상했다. 마닐라 데라살대학교에서 문학 명예교수이자 2019년부터 상주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학문지에 시가 실렸으며, 필리핀어, 비니사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한국어, 일본어, 에스토니아어, 베트남어, 중국어, 칸나다어 등으로 번역됐다

 

비니샤야어(Binísayâ) : 필리핀의 중앙 비사야 제도의 보홀섬의 모어는 비니사양 볼-아논(Binísayang Bol-anon)이다. 이 언어는 ‘비사얀어(Visayan)’ 혹은 ‘세부아노어(Cebuano)’—이 명칭은 세부섬의 언어를 뜻하는 것으로, 세부시(市)가 중앙 비사야 제도에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라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의 방언이다. 세부아노-비사얀(Cebuano-Visayan)은 필리핀에서 타갈로그어(Tagalog) 다음으로 큰 민족 언어학적 집단이다. 마닐라와 세부 같은 권력의 중심지에 대한 이러한 저항은 오늘날 비사야스어(Visayas)를 사용하며 활동 중인 작가들 사이에서 나타난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우리의 토착어를 ‘세부아노어’—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명칭—로 부르길 거부하면서 그것의 참된 명칭이 ‘비사야어’ 혹은 ‘비니사야어’ 혹은 심지어 더 구체적으로 ‘비사양 볼-아논(Bísayang Bol-ánon)’이라고 주장한다.

마르조리에 에바스코 페르니아
마르조리에 에바스코 페르니아

 

나의 모어(母語)로 시 쓰기: 비니사야어(Binísayâ)로 하는 문학예술 활동 마노아의 하와이대학교 필리핀 연구 센터의 세라핀 콜메나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비사야어(Bísayâ)는 말레이폴리네시아어족에 속하는 일군의 동족 언어들이다. 필리핀 중부와 남부에서 사용되는 비사야어는 대략 스물다섯 개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몇몇 언어는 그것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의 수가 천 명 이하여서 사라지기 직전인 반면, 또 다른 언어들은 수백만 명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비사야어에는 세부아노어(Cebuano), 힐리가이논어(Hiligaynon) 혹은 일롱고어(Ilonggo), 아클라논어(Aklanon), 카피즈논어(Capiznon), 키나라이아어(Kinaray-a), 반토아논어(Bantoanon), 롬블로나논어(Romblonanon), 쿠이오논어(Cuyonon), 와라이어(Waray), 수리가오논어(Surigaonon), 부투아논어(Butuanon), 타우소그어(Tausog) 등이 포함된다. 대략 이천팔백만 명이 사용하는 비사야어족은 필리핀에서 가장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국어로 사용하는 언어이다.”(http://www.hawaii.edu/cps/visayans.html). 나는 필리핀의 중앙 비사야 제도의 보홀섬에서 태어났고, 나의 모어는 비니사양 볼-아논(Binísayang Bol-anon)이다. 이 언어는 ‘비사얀어(Visayan)’ 혹은 ‘ 세부아노어(Cebuano)’—이 명칭은 세부섬의 언어를 뜻하는 것으로, 세부시(市)가 중앙 비사야 제도에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라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의 방언으로 여겨진다. 세부아노-비사얀(CebuanoVisayan)은 필리핀에서 타갈로그어(Tagalog) 다음으로 큰 민족 언어학적 집단이다. 나는 학교에 다니면서 영어와 타갈로그어밖에는 배우지 못했다.

파스 M. 베베스는 자신의 논문 「필리핀 국어인 필리핀어(Filipino)의 발달」에서 이렇게 말한다. “필리핀 국어 인 필리핀어는 ‘1987 헌법’을 통해 마침내 확립되었다. 헌법 제14장 제6조에는 ‘필리핀 국어는 필리핀어이다. 필 리핀어가 발달함에 따라, 필리핀어는 기존 필리핀어와 다른 언어를 토대로 더욱 발달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https://ncca.gov.ph/aboutncca-3/subcommissions/subcommission-on-cultural-disseminationscd/ language-andtranslation/development-of-filipino-the-national-language-of-the-philippines/) 문어(文 語)와 구어(口語)를 모두 포함한 실제 사용 측면에서, 필리핀어는 필리핀의 타갈로그어에 기반한 링구아 프랑카1 로 발전하고 있다.

비사야 제도와 민다나오섬에서 세부시(市)는 가장 오래된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중심지이다. 그곳은 처음에는 1565년에 스페인의 식민지 개척자인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에 의해 ‘빌라 데 산 미구엘’로 명명되었다. 그곳은 스페인이 극동 지역에서 식민지로 점유한 군도(群島)의 첫 수도였다. 언어명 ‘세부아노’는 섬의 이름인 ‘세부 (Cebu)’에 스페인의 식민지 계통을 의미하는 ‘아노(ano)’가 접미사로 붙어 만들어진 어의차용어2 이다.(https:// www.britannica.com/place/Cebu-City). 나는 보홀섬의 북서쪽에 위치한 마리보족(Maríbojoc)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세부에서 모터가 달린 현대식 페리보트를 타고 동쪽으로 가면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http://www.maribojoc.gov.ph/about/history) 보홀섬은 세부보다 작고, 그곳의 수도인 타그빌라란(Tagbilaran)은 스스로를 ‘남부의 여왕 도시’로 부르는 부유하고 눈부신 도시 세부의 미천한 친척이다. 하지만 보홀 사람들은 자신들을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에 저항한 용감한 남녀의 후손으로 여기며 자랑스러워한다. 그 남녀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는, 필리핀 역사상 가장 긴 시간인 85년 동안 저항군을 이끈 프란시스코 다고호이가 있다. (https://philippineculturaleducation.com.ph/dagohoy-francisco/) 이것이 심지어 지금도 누가 볼-아논(Bol-anon) 사람에게 어디 출신이냐고 물으면, 그녀가 농담으로 “보홀 공화국” 출신이라고 대답하는 이유이다.

마닐라와 세부 같은 권력의 중심지에 대한 이러한 저항은 오늘날 비사야스어(Visayas)를 사용하며 활동 중인 작가들 사이에서 나타난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우리의 토착어를 ‘세부아노어’—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명칭—로 부르길 거부하면서 그것의 참된 명칭이 ‘비사야어’ 혹은 ‘비니사야어’ 혹은 심지어 더 구체적으로 ‘ 비사양 볼-아논(Bísayang Bol-ánon)’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1995년에 식민지 시대의 언어인 영어로만 된 지적 생산물의 사용과 그것을 영속화하는 행위에서 물러서는 정치적 선택으로써 나의 모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인문학자인 에를린라 알부로는 내 모어의 많은 단어들이 세부에서 사용되는 세부아노어에서 이미 사라졌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이러한 발언은 나를 기쁘게 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토착어가 보홀 사람들이 계속 사용하는 가운데 활기찬 생명력을 이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이 단어들이 민디나오섬의 여러 지역에 사는 보홀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보홀 사람들의 조상은, 미국 식민 정부가 1903년에 공유지 불하법을 발표한 이후로 여러 곳에서 큰 섬에 정착민으로 이주해 왔던 사람들이다. (https://www.dar.gov.ph/about-us/agrarian-reform-history/)

예술 활동을 탈식민지화하기

내가 다시 토착어로 시를 쓰게 된 것은 1991년에 스코틀랜드 미들로디언 주의 호손덴 성에서 한 달 간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부터이다. 영국인 작가 세 명—에바 터커, 헬렌 딕슨, 윌리엄 파크스—과 미국인 작가 두 명, 즉 더글러스 스크리프와 조지프 맥컬리어가 나와 함께했다. 조지프는 성 관리인이기도 했다. 저녁 식사 후의 모임에서 그들은 그날 쓴 글을 공유하곤 했고, 두 주 동안 나는 그저 그들의 말을 듣기만 했다. 나는 그들은 그렇게도 쉽게 글을 쓰는 듯 보이는데, 왜 나는 고심해서 글을 쓰고, 원고를 계속 퇴고하고, 시형(詩 形)과 단어의 선택을 계속 수정해야 하는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깨달음이 왔다. 그것은 그들은 태어나서부터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한 반면, 나는 어렸을 때 학교 선생님인 가족들에게 영어를 배웠고, 학교를 다니며 박사 학위를 딸 때까지 영어를 교육의 수단으로만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영어로 번역된 다른 문화의 텍스트를 포함한 영미 문학의 열렬한 독자로 성장했다. 독서는 영어 글쓰기로 이어졌고, 영어로 쓴 나의 시는 1908년에 페르난도 마라마그가 「마닐라 만의 달빛(Moonlight on Manila Bay)」이라는 제목의 소네트를 쓰면서부터 시작된 필리핀 문학사에 속한 것이다. 문학 비평가이자 필리핀 예술원 작가인 제미노 H.아바드는 필리핀 영어시의 전통이 이 숙련된 시에서 시작되었다고 역사적으로 규정하면서, 그것은 이 작품이 영어로 쓰인 문학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 작품의 시적 언어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만의 표현으로 이런 숙련된 실력을 단지 ʻ영어로 쓰기(writing in English)’가 아닌 ʻ영어로부터 쓰기(writing from English)’ 라고 부른다. 호손덴 성의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나는 나의 토착어로 다시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나의 정신을 영어로 생각하고 꿈꾸는 일에서 탈(脫)세뇌하는 것 외에도, 나는 나의 모어를 되찾아서 다시 배워야만 했다. 나의 첫 번째 전략은 세부아노 문학 전통의 모든 작품을 읽는 것이었다. 나는 운 좋게도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라살대학교 국문과에서 진행한 ʻ필리핀의 문학사’라는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 기록 보관소에서 기록을 되찾아오고 세부아노 문학의 전통을 배운 것은, T. S. 엘리엇이 시인으로서의 개인과, 자신의 작품이 그 일부가 되기를 바라는 전통 사이에 비평적 관계를 상정했던 것을 내 식대로 해본 것이었다. 나의 두 번째 전략은 문학 번역이었다. 1998년에 내가 쓴 박사 학위 논문의 제목은 「담론으로서의 시 번역: 중앙 비사야스 지역의 동시대 작가들이 영어로/영어로부터(in/from English) 쓴 시를 세부아노어로 복원하여 번역하기」였다. 나는 후기 식민주의를 통해 중앙 비사야스 지역에서 태어나 영어로/영어로부터 글을 쓰던 나의 동시대 동료 작가들이 실은 그들의 독특한 사회적, 문화적 환경을 번역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번역의 이론화 작업과 그 실천은, 나의 모어를 되찾고 신(新)식민지주의의 영어 사용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문화유산을 되찾는 활동의 일부로서 내게 중요하게 작용했다. 1999년, 이제는 나의 시를 비니사양 볼-아논어로 번역할 때였다. 나의 두 번째 시집 『황토색(Ochre Tones): 영어와 세부아노어로 쓴 시들』은 나의 ‘역경(易經)’이 되었다. 나의 첫 시집 『꿈을 엮는 이들(Dreamweavers) 』과 마찬가지로, 그 책도 마닐라 비평가 협회에서 수여하는 ‘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했다. 내가 가는 길이 옳다는 다른 긍정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비사야 제도와 민다나오섬에서 유통되는 주간지 《비사야》에 「바바 사 칼라요(Bàbâ sa Kalayo)」를 발표하게 된 것도 그것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잡지 덕분에 내가 영어로 시를 발표해서 생긴 독자들보다 더 많은 필리핀 독자들이 생겨났다. 나는 2002년에 ‘아이오와대학 국제 작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이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며 스스로 이렇게 읊조렸다. “나에게 그건 집으로 돌아가는 힘든 여행에서의 첫 번째 간이역이었어. 그것은 본질적인 올바름에 대한 긍정이었고, 순례에 대한 무형의 보답이었어. 내가 집이라고 부르는 시와 언어의 품 안에서, 나는 마침내 내 어머니의 젖을 입에 물게 된 거야!”

그때부터 지금까지 과거로 회귀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나의 모어로 시를 쓰는 기술을 연마했고, 결국 학술적인 글쓰기와 예술 활동 모두에서 영어와 비니사야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2013년, 마침내 나는 곧장 나의 모어로 시를 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때 쓴 시가 바로 ‘기후와 지속가능한 도시 연구소(ICSC)’에서 출간한 『아감(Agam): 불확실성과 기후 변화에 대한 필리핀어 이야기』에 실린 긴 이야 기 시 「크룻사이(Krutsay)」이다. 시의 화자는 민다나오섬 연안의 바리오3 에 사는 한 남성 어부로, 그의 조상 은 보홀섬에서 와서 그곳에 정착한 정착민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사진 한 장을 보며 즉각적으로 긴 이야 기 시를 쓰는 일은 그 어부의 목소리에 편안히 귀를 기울이며 그의 말을 받아 적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기억 하기로, 시의 네 부를 쓰는 내내 나는 거의 최면 상태에 빠져 있었다. 출판사에서 내게 이 시의 낭독을 녹음해 달 라고 부탁했을 때, 나는 비사야어 잡지의 편집자이자 비사야어로 시를 쓰는 남성 시인인 리첼 도로탄에게 낭독 을 부탁했다. 이 낭독은 아감 어젠다(Agam Agenda)의 기후 팟캐스트에서 온라인으로 들어볼 수 있다(https:// agamagenda.com/marjorie-evascoand-richel-dorotan/). 그리고 출판사에서 내게 「크룻사이」를 영어 로 번역해 달라고 부탁했으므로, 나는 문학이라는 바다를 오직 영어로만 항해하는 독자들이나 여전히 자신의 토 착어가 아닌 영어로 읽기를 택한 독자들을 위해 이 시를 비니사야어에서 영어로 번역했다.

나의 모어로 시를 쓰기로 용기를 낸 지도 이제 십 년째로 접어들었다. 『황토색(Ochre Tones)』의 자서( 自序)에 스스로 번역을 하는 나의 프로젝트에 대해 썼던 내용이 떠오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긴 에움길 이었다. 하지만 나의 모어로 쓰려고 손을 움직일 때마다 내 두 귀는 아이의 손가락처럼 동그랗게 말려서, 내 가 알고 있긴 하지만 어떻게 꿈꾸는지는 잊어버린 듯한 언어의 모음들을 감쌌다.” 2019년, 역시 내가 비니사 야어로 먼저 쓴 시인 「파롤 데 콤바테(Farol de Combate)」가 《월드 리터리처 투데이(World Literature Today)》 여름호에 수록되게 되었다. 여름호의 주제는 ‘기후 변화 문학의 떠오르는 바다4 ’였다. (https://www. worldliteraturetoday.org/2019/summer/two-poems-philippines-marjorie-evasco) 이 시는 나의 예 술 활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었는데, 왜냐하면 시의 화자가 시의 1부에서 하는 말이 ‘집으로 돌아 간다(coming home)’는 제스처의 수행적 발화이기 때문이다. 이는 근원적 장소로 돌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그 녀의 언어로 ‘돌아간다(going back)’는 것을 의미한다: “사 아콩 파그발릭 사 아콩 피누론강 나안단(sa akong pagbalik sa akong pinulongang naandan.)”

나는 나의 토착어로 돌아가는 여행의 십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야(It is Time to Come Home): 신작시와 발표시 모음집』이라는 제목의 새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 이 시집에는 비니사야어, 영어, 필리핀어, 스페인어로 쓰인 시들이 수록될 예정이다. 나에게 처음으로 시를 가르쳐 준 선생님이신 멀리 알루난은 앞으로 출간될 나의 시집 서문에 이렇게 쓰셨다:

이 시에서 ‘집(home)’은 단순한 장소 이상의 공간이 되었다. 이 단편(segment)에서, 그녀는 옛 우화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정작 자신은 불신하면서도 그 이야기들을 사랑스럽게 들려주고 있다. 링가나이 우기스 (lingganay ugis) 이야기에서, 전설적인 아바탄강에 가라앉은 종은 깊은 물속에서도 여전히 소리 없는 메시지를 울리고 있다. 얕은 물에서 고기를 잡는 아이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괴물 물고기인 코그통(cogtong) 과 맞붙어 싸우길 여전히 바라고 있다. 자신들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누군가의 마음 한구석을 여전히 사악하게 어슬렁거리고 있는 탐발로스로스(tambaloslos)의 이야기는 악에 대한 인간의 성향을 불편하게 상기시켜 준다. 이 이야기들은 그녀의 근원인 비옥한 땅에서 길러낸 것이다.

이 시집의 출간을 준비하면서, 나는 1976년 5월에 이 어려운 ʻ기교와 음울한 예술(craft and sullen art)5 ’을 배우고 섬기기로 진지하고 의식적인 결정을 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오십 년에 이르는 나의 시력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내년에 출간될 이 시집이 세심한 독자들을 초대해서 그들이 겹겹이 층을 이룬 나의 글쓰기 삶의 길을 따라 걷게 되길 바란다. 1973년에 말 그대로 보홀섬을 떠나 타클로반, 두마게테, 마닐라로 갔지만, 언어가 마술적이고도 종잡을 수 없는 여러 방식으로 나의 이마에 퍼부어 준 시라는 이름의 환영 키스를 받으며 결국 계속해서 돌아가게 되었던 그 삶의 길을 말이다.

주석

1) lingua franca. 서로 다른 모어를 사용하는 화자들이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공통어로 사용하는 제3의 언어.

2) 다른 언어의 어구가 나타내는 의미를 차용하여 만든 어구.

3) barrio. 스페인어권 국가에서 도시의 한 구역을 일컫는 말.

4) ‘떠오르는 바다(Rising Sea)’는 ‘떠오르는 스타(Rising Star)’라는 표현을 비튼 언어유희이다.

5) 웨일스의 시인 딜런 토머스의 시 「나의 기교와 음울한 예술로(In my craft or sullen art)」에서 인용한 구절.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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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의 하와이대학교 필리핀 연구 센터의 세라핀 콜메나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비사야어(Bísayâ)는 
말레이폴리네시아어족에 속하는 일군의 동족 언어들이다. 필리핀 중부와 남부에서 사용되는 비사야어는 대략 
스물다섯 개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몇몇 언어는 그것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의 수가 천 명 이하여서 
사라지기 직전인 반면, 또 다른 언어들은 수백만 명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비사야어에는 세부아노어(Cebu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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