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교과서에 실려야 할 옛 시조 30편(4)-정지상이 쓴 천하의 명작
이승하 시인의 교과서에 실려야 할 옛 시조 30편(4)-정지상이 쓴 천하의 명작
  • 이민우
  • 승인 2022.12.04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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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에디터
사진=한송희에디터

 

정지상이 쓴 천하의 명작

정지상(?1135)은 고려 인종 때의 문신이다. 그의 명작 칠언절구 한시 송인送人은 이렇다.

雨歇長堤草色多 비 갠 긴 언덕엔 풀빛이 푸르른데

送君南浦動悲歌 남포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울먹이네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 물이야 어느 때 마를거나

別淚年年添綠 해마다 이별의 눈물이 강물을 더하는 것을

 

이 시를 시조의 초ㆍ중장으로 삼고 종장을 새로 써 붙여 시조로 만들었다. 그래서 내용이 바뀐 것은 없다.

 

우헐장제雨歇長堤 초색다草色多ᄒᆞ니 송군남포送君南浦 동비가動悲歌

대동강수大同江水 하시진何時盡고 별루연년別淚年年 첨록파添綠波ㅣ라

승지勝地에 단장斷腸 가인佳人이 몃몃친 줄 몰라라

 

이 시조의 종장을 이 좋은 경치에 애끓는 미인이 몇몇인 줄 몰라라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정지상 본인이 한시로도 쓰고 시조로도 썼다고 보기는 어렵고, 그의 한시를 후대인이 살을 붙여 시조로 만든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시조로 고친 이는 대동강물이 마르지 않는 것이 남정네를 떠나보낸 가인이 한두 사람이 아니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시를 쓴 정지상은 임을 여성으로 화자를 남성으로 설정했으므로 개작의 과정에서 화자(persona)가 바뀌었다. 만약 이 시조가 교과서에 실리게 된다면 선생님은 개작의 과정에서 화자가 바뀐 희유한 예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초ㆍ중장과 종장의 화자를 동일인으로 볼 수도 있다. 여기에 대해 즐거운 토론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정지상은 시에 있어서 김부식과 쌍벽을 이루었다. 김부식이 정지상의 시구 절간에선 스님들의 경 읽기가 끝나고 하늘빛은 빛나기가 유리 같구나琳宮梵語罷 天色淨琉璃에 반해 자기 시에 이 구절을 갖다 써도 되느냐고 물어보았는데 정지상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권력자인 김부식이 임금 옆에서 거들먹거린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부식은 그대로 갖다 쓰지는 않고 적당히 고쳐서 쓸 생각이었을 것이다. 김부식은 그때 엄청난 모욕감을 느꼈다. 세월이 흘러 서경으로의 천도를 주장하는 묘청이 난을 일으켰을 때 서경 출신 정지상이 묘청의 편에 섰고 그 결과는 참형이었다. 만약 김부식의 인용 부탁을 정지상이 거절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식으로까지 복수를 하지 않았을 거라고 이규보는 백운소설에서 썼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도 해줄 수 있는데, 교과서에 송인이든 이 시조든 실려야 가능한 일이다.

 

 

 

사진=이승하시인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향일성의 시조 시학』,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인산시조평론상, 유심작품상,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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