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덧없는 우리 인생, 즐기기도 하자꾸나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오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ᄒᆞ니 쉬여 간들 엇더리
(청산 속의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한번 바다에 다다르면 다시 오기 어렵단다
밝은 달 온 산에 가득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명월은 황진이의 기명妓名이다. 즉, 자기 자신을 가리킨 것이다. 푸른 시냇물을 뜻하는 벽계수는 당시 왕족이던 벽계수碧溪守란 사람을 중의법으로 쓴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고, 다음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송도(개성)에 부임했다가 한양으로 돌아오는 양반마다 그곳에 글재주와 춤솜씨가 뛰어나고 노래에 가야금 연주까지 수준급인 기생 황진이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것이었다. 벽계수는 그들의 말을 듣고 지금까지 나를 반하게 한 기생은 없었다, 유학을 공부한 너희들이 왜 그 모양이냐고 빈정거리곤 했다. 기생은 신분이 낮았으므로 왕족인 벽계수는 황진이를 얕잡아 보았던 것이다. 벽계수가 빈정대더라는 말을 들은 황진이는 작전을 짰다. 송도의 사또에게 부탁해 벽계수가 송도로 놀러 오게 한 것이다.
벽계수가 나귀를 타고 오다가 만월대에 이르러 쉬고 있다는 말을 미리 그곳에 보내놓은 하인한테서 전해 듣고 황진이는 한걸음에 만월대로 달려간다. 곱게 단장한 황진이 나타나 벽계수가 탄 나귀의 고삐를 잡고 이 노래를 부르니 벽계수, 나귀에서 내려와서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고 절하며 항복했다는 옛날이야기.
이 시조에는 황진이의 인생관이 나타나 있다. 도를 닦는 것도 좋고 예의범절을 차리는 것도 좋지만 이 세상에는 예술이 있고 풍류가 있다. 자연을 즐기며 노래하다 보면 덧없고, 남녀가 사랑하면 더욱 짧은 게 인생인데 도덕군자인 양 체면을 차리고 살지 말라는 충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벽계수는 황진이의 치마폭 안에서 며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는 돈 몽땅 다 쓰고 노잣돈 몇 푼을 황진이에게 얻어서 한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향일성의 시조 시학』,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인산시조평론상, 유심작품상,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