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교과서에 실려야 할 옛 시조 30편(25)-효종이 오래 살았더라면 이 나라는?
이승하 시인의 교과서에 실려야 할 옛 시조 30편(25)-효종이 오래 살았더라면 이 나라는?
  • 이승하
  • 승인 2022.12.2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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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효종이 오래 살았더라면 이 나라는?

 

청강淸江에 비 듯ᄂᆞᆫ 소래 긔 므어서 우읍관대

만산홍록滿山紅綠이 휘드르며 웃ᄂᆞᆫ고야

두어라 춘풍이 몃날이리 우을대로 우어라

 

(맑은 강에 비 떨어지는 소리 그 무엇이 우스워서

산 가득 핀 꽃과 초목이 몸 흔들며 웃는구나

두어라 춘풍이 몇 날 불까 웃을 대로 웃으라)

 

효종이 왕위 즉위를 하기 전, 그러니까 인조의 제2남 봉림대군이던 시절에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봉림대군은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가 무려 8년 동안 억류되어 있었다. 긴장되고 불안한 나날, 이런 시조를 쓰면서 마음을 달랬다.

봉림대군은 이 시조의 모든 부분에서 비유법을 썼다. 청강은 청나라다. ‘비 떨어지는 소리는 볼모로 잡혀 와 있는 우울한 신세를 가리킨다. 만산홍록은 모든 주변 사람들이 다 청나라 사람들임을 말하는 것이고 춘풍은 청나라의 기세를 가리키는 은유적인 표현이다. 웃을 대로 웃으라는 춘풍이 영원히 불지는 않을 테니 언젠가 마음껏 웃어줄 것이라는 다짐이 담겨 있는 결구 부분이다.

소현세자가 죽자 봉림대군은 꿈꾸지 않았던 왕(효종)이 되었다. 그는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신하들과 함께 북벌계획을 수립하여 군사를 양성하고 군비를 확충하였다. 하지만 북벌정책을 반대하는 신하들의 목소리도 높았으며 무관을 하대하는 풍조는 여전했다. 효종은 자신의 북벌정책을 지지한 박서朴遾, 원두표元斗杓 등을 차례로 병조판서에 임명하고 무장 이완李浣을 훈련대장으로 임명하여 군사력 증강에 애썼다. 한때 유배 중이던 김자점이 청나라에 북벌정책을 밀고하여 기밀이 누설되어 고초를 겪었으나 이를 잘 무마하고 계속 북벌을 위한 군비 확충을 기하여 군제의 개편, 무관을 우대하는 등용 정책을 폈고, 군사력 강화에 힘썼다. 1654년에는 한강변에서 13000명의 병사가 펼치는 대대적인 관병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이때 제주에 표류해온 네덜란드인 하멜과 그의 일행들에게 서양식 무기를 제조하게 하여 그 무기를 시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나라의 국세가 더욱 일어나 북벌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1654년 러시아와 청나라 사이에 충돌사건이 일어나자 청나라의 강요로 러시아 정벌에 출정하기도 했다. 1659년 효종이 갑자기 급서하자 그가 추진했던 북벌정책도 끝나고 말았다. 조선의 국운을 크게 떨칠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청나라, 너희를 마음껏 비웃어주겠노라고 단단히 결심했는데 효종의 꿈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사진=이승하시인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향일성의 시조 시학』,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인산시조평론상, 유심작품상,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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