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여 시조를 읽으라
가마귀 싸호ᄂᆞᆫ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가마귀 흰 빗ᄎᆞᆯ 새올세라
청강淸江에 잇것 시슨 몸을 더러일가 ᄒᆞ노라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 빛을 시샘할세라
맑은 물에 기껏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이 시조는 정몽주가 이방원이 베푼 연회에 갈 때 정몽주의 모친이 써 아들에게 주었다고 알려져 있는 것이다. 이성계와 그의 아들들이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는 역성혁명을 꿈꾸고 있음을 정몽주의 모친이 눈치채고 있었던 것일까? 그랬던 것 같지는 않고, 무언가 안 좋은 기운을 느낀 정몽주의 모친이 몽주가 연회에 참석하기는 하되 그들과 무슨 모의를 하지는 말라고 이 시조를 통해 신신당부한 것이다. 후일 태종이 되는 이방원은 시조 「하여가何如歌」를 통해 정몽주의 마음을 떠본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이런들 엇더ᄒᆞ며 저런들 엇더ᄒᆞ리
만수산 드렁츩이 얼거진들 긔 엇더ᄒᆞ리
우리도 이 ᄀᆞᆺ치 얼거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전통적인 충신의 논리에 집착하지 말고 현실에 적응하며 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유혹하는 내용이다. 이방원의 이 시조를 받고 정몽주가 써준 시조를 우리는 「단심가丹心歌」라고 부른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넉시라도 잇고 업고
님 향ᄒᆞᆫ 일편단심이야 가싈 줄이 이시랴
이 시조는 이방원의 회유에 넘어갈 생각이 전혀 없다고 거절하는 내용이다. 이방원은 용단을 내린다. 제일 큰 훼방꾼이 되겠다고 작심한 정몽주를 살려둘 수는 없다고. 그리하여 자객 조영규를 보내 선죽교에서 살해한다. 선죽교의 한쪽이 붉게 물들어 있는데, 필자는 개성 관광이 허용되었을 때 가서 보고 깜짝 놀랐다. 완전히 붉은색은 아니었지만 다리 난간 한쪽이 분명히 불그죽죽했다.
이방원이 베푸는 연회에 가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시조를 써 건넨다는 것이 지어낸 이야기 같지만 어떻든 국어선생님은 이 3편의 시조를 설명하면서 고려의 패망과 조선의 건국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까마귀 싸우는 골이 지금은 대한민국의 여의도임을 은근슬쩍 말하는 선생님도 있을 것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향일성의 시조 시학』,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인산시조평론상, 유심작품상,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조의 가치를 나눔에 있어 뜻깊은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더 많은 시조가 교과서에 실리고 읽힐 수 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