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리즈 소개
어쩌다 작가 에세이 시리즈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서 작가의 꿈을 꾸고있는 많은 분들을 응원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이 작가님들이 어떤 시련과 즐거움을 거쳐왔는지 들여다보고 기운을 얻어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획자 윤여경-
![2021 코믹 야구 옴니버스 장편소설 [무진시 야구장 사람들]](/news/photo/202212/77498_51635_2833.jpg)
#1. 그날의 아침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드디어 조금만 있으면 그것이 나간다. 이후에 내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대전의 호텔 침대에 누워 몸을 뒤척인다. 간밤에 잠을 설쳤다. 이 상황에서 잠이 올까. 말도 안 되지.
약속했던 시간이다. 들고 있던 휴대폰에 접속한다. 그리고 기사를 확인한다. 나왔다. 정말. 그것이. 가장 먼저 올라온 건 역시 그 형의 기사. 약속을 잊지 않았다. 고맙다. 다른 기사들이 이어진다.
동시에 카톡이 울리기 시작한다.
형, 이거 뭐예요.
헐, 대박.
야, 너 책 냈어?
뭐야. 별로 얘기도 안 했는데.
이번 소설은 일부러 필명으로 냈다. 회사도 숨겼다. 마지막까지 출판사와 그 부분에 대해 토론했다. 결국 내가 이겼다. ‘야구계 종사자’라는 다소 애매하고 올드한 표현이 쓰였다.
책이 나왔다는 기사가 주르륵 나온다. 친한 기자들에게 슬쩍 부탁했다. 다들 약속을 지켜줬다.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 이번에 다시 한번 느꼈다.
시간을 보니 곧 점심시간. 아직 야구장으로 출근하려면 좀 시간이 있다. 하지만 방에만 있기엔 갑갑하다.
엘리베이터를 지나 바깥으로 나간다. 어제와 다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도 괜히 신경을 써본다. 설마. 혼자만의 착각.
호텔 앞에 있는 공원을 혼자 걸어본다. 지나간 시간이 생각난다. 다시 기사를 본다.
그렇구나. 정말 나왔다. 내 이름으로 책이. 오 마이갓! 세상에! 맙소사! 내가 꿈꿨던 그것(예를 들면, 문단에 혜성같이 데뷔를 한, 천재적인, 뭐 그런)과는 꽤 다르지만.
소설이 나온다고 주변에 있는 친한 기자들에게 미리 부탁을 했다. 그중 평소에 흠모하던 사람 좋은 하 형이 말했다.
내가 이렇게 좋은데, 가족들은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자기 일처럼 좋아해 주는 모습이 고마웠다.
회사 다니면서 소설을 쓰다니, 대단하다.
놀라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때 느낀 기분은 뿌듯함이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하지만 그 과정은... 그렇게 순탄하지 많은 않았다. 무언가를 이루기 매우 어려웠던, 주인공의 목표와 닮았다. 그것은 코믹과 비극, 그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나의 이 작은 성공을 정리하고 싶었다. 물론 난 지금도 소설을 쓰고 있고, 언젠가 유명한 작품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안 될 수도 있잖아!
그래서 이 글을 지금 쓰게 됐다. 나처럼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에 가지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하루하루 그날의 무게를 견디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2. 책을 쓰는 건 시시포스와 같아요
처음 소설을 써보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아이가 태어날 때 즈음이다. 그전에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에 제대로 도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기적이었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이 이상의 기적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후에 모든 일은 실패해도 되잖아? 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소설을 쓰다가 망하는 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비난도.
누구의 아빠로 불리게 된 것도 하나의 동기였다. 이렇게 누군가의 아빠로만 끝내기엔,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내 이름을 남기고 싶었다. 그게 아이에게도 더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시작했다.
예전의 나는 계획왕이었다. 계획을 세우는 과정을 즐겼던 것 같다. 색깔이 있는 펜으로 형형색색 계획표를 채우는 걸 즐겼다. 그리고 삼일 이내에 다시 계획을 수정했다. 그렇게 작심삼일을 반복하며 이날까지 살아왔다.
소설은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직하게 던져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떤 상황이든, 마운드 위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직구만을 고집하는 투수처럼, 포수의 사인에도 고개를 저을 정도의 뚝심도 필요할 테고.
첫 소설은 개요 없이 썼다. 내가 좋아하던 헐리우드 영화 ‘패밀리맨’을 레퍼런스로 삼았다. 이 이야기의 원형은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이다. 현실에 만족하던 주인공을 물 밖으로 끌어내서 흔들어댄다, 는 코미디의 요소도 섞었다. 진지한 건 싫었다. 그래서 제목도 ‘우상무와 웃기는 외야석’이라고 지었다.
어찌어찌 간신히 초고를 썼다. 여기저기서 코멘트를 들었다. 이 소설이 대체 무슨 가치가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이야기 한 편을 쓰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갑자기 의기양양해졌다. 회사 다니면서 이 정도의 소설을 쓴 것도 대단하지 않나? 라는 대견함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 다음 날 다시 아니야, 이런 건 아무도 읽지 않아, 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한마디로 감정의 파도타기를 오고 가는 나날이었다.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쓰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일하고 있는데 낯선 번호의 전화가 왔다. 일 하는데 귀찮게 뭐야, 하면서 퉁명스럽게 받았다. 시간은 저녁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스팸 전화를 돌리는 성실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저기, 여기 OO문고인데요, 이번에 소설 접수하셨죠?
갑자기 귀에서 수화기를 좀 멀리 떨어뜨렸다. 무슨 말이야, 이게? 크게 호흡을 하고 다시 전화기에 귀를 댔다.
많이 놀라셨죠? 하하.
상대방은 놀랍게도 내가 쓴 소설이 스토리 공모전 최종심에 올랐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최종심은 독자들의 투표와 전문가의 평가가 합쳐져서 치러진다는 설명도 했다.
그렇게 우연히 데뷔작으로 최종심에 오른 작가가 됐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경쟁은 꽤 치열했고, 야구소설로 최종심에 오른 것도 최초라고 했다. 그땐 그게 어느 정도의 행운인지도 몰랐다.
아쉽게 최종심에선 떨어졌지만, 자신감을 갖게 됐다. 이대로 계속하면 뭔가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됐다.
하지만 초심자의 행운은 딱 거기까지였다.
다음 작품은 내가 필살기로 생각하던 소설. 야구장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의 시점을 바꿔서 쓰는 오피스 드라마였다. 야구단 과장과 치어리더, 선수, 열성팬까지. 오쿠다 히데오 작가의 ‘마돈나’라는 오피스 드라마를 레퍼런스로 삼았다. 그의 가벼운 문체와 개그 감각을 열심히 익혔다.
합평 수업을 듣던 선생님께 좋은 말씀을 듣기도 했다. 장편소설로 등단한 선생님은, 이 정도의 작품이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격려해주셨다.
힘을 내서 썼다. 야구장이라는 공간은 내가 잘 아는 곳이라서 즐겁게 썼다. 힘을 빼고 던지려 노력했다. 무거운 소설은 싫었다.
그렇게 초고를 썼고, 다시 수정했다. 코멘트를 듣고 다시 쓰고, 그리고 쉬다가, 다시 썼다.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했을 때, 원고를 투고하기 시작했다. 곧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으면서.
그렇지만 행운은 따르지 않았다. 공모전에선 아무런 답도 들을 수 없었다. 고치고 또 고치고, 다시 넣었다. 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첫 소설이 행운이 따랐던 터라, 실망도 컸다. 몇 년이나 썼는데, 시간을 낭비했다는 비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루지도 못할 목표에 도전하는 나 자신이 시시포스 신화의 인물과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또 어영부영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3. 내 스토리의 조력자들
하지만 나만의 스토리에도 조력자는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괴로워하던 어느 날, 예전 공모전 담당자였던 편집자 A가 떠올랐다. 몇 년간 연락도 없었지만,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원고를 보냈다. 기획안도 넣었고, 본문엔 무례를 용서해달라는 말도 적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다. 차가운 직장인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날, 갑자기 메일이 도착했다. 그분, A는 정말 긴 메일을 보내줬다. 나의 소설을 잘 읽었고, 같은 팀원들과도 많은 얘기를 했다, 좋았던 부분도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우리 쪽에서 내줄 순 없다, 대신 원한다면 다른 곳을 소개해줄 수 있다, 라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을 보냈다.
네, 저 이 소설 꼭 책으로 내고 싶어요.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이후의 일은 꽤 빠르게 지나갔다. 마침 야구팬인 출판사 대표님을 컨택하게 됐고, 대표님은 내 소설을 좋아해 주셨다. 바로 계약을 맺었고, 교정 작업을 했다. 교정을 봐주는 분은 교정의 신 같았다. 내가 몇 년간 끙끙 앓던 부분도 부드럽게 수정해줬다. 대표님은 초보 작가임에도 내 의견을 많이 들어주셨다. 그렇게 첫 책을 쓰는 과정이 순조롭게 지나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봄날의 어느 날, 집 근처 카페에서 작가의 말, 을 쓰던 그 날이다. 쓰고 싶은 말은 이미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소설을 쓰다가 실패해도 된다는 용기를 얻었다는 말,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그렇게 시간은 꿈같이 흘러, 나의 책이 세상에 나온, 한 명의 작가가 됐다.
#4. 그래서 그 이후엔?
소설을 내서 뭔가 달라졌나요?
글쎄, 뭐가 달라졌을까.
내 소설은 나오자마자 주요 서점의 매대에 깔렸고, 무려 스티븐 킹 신작 옆에 놓이기도 했다. 서점 한 편 광고판에 내 소설의 광고가 실리기도 했다. 주변에서 많은 연락을 받았고, 책을 낸 것을 축하해주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낸 첫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르지도 못했고, 서점에서 곧 사라졌다. 이후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고, 인세를 벌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도 못했다. 나는 다시 직장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고 하루하루 버티는 생활로 돌아갔다.
그럼 그동안의 노력은 실패한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삶은 한 번의 성공으로 끝나는 게임이 아니라, 매일매일이 이어지는 긴 여행길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다음 소설을 향해 발을 내딛고 있다. 이 소설 다음엔, 또 다음, 그리고 또 다음 소설. 계속해서 나만의 소설을 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뛴다.
가끔 내 소설을 읽고 누군가 쓴 감상평을 읽는다. 특히 온라인 서점에서 이벤트에 참여한 분들이 꽤 많은 글을 남겨주셨다. 대체로 힘이 나는 내용이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다시 폼을 가다듬는다. 다음 이닝의 공을 던지기 위해, 포수 미트를 노려보고, 크게 심호흡을 한다.

1. 작가소개 : 채강D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야구팬이 되어 있었다. 영화과에서 논문 대신 영화 시나리오를 써서 졸업했고, 현재는 야구로 밥벌이를 하는 현직 야구인. 야구를 기본으로, 다양한 장르와 엮어 이야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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