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대를 찾아서 11
―동춘서커스단
이승하
서커스단이 왔대여 동춘서커스단이 왔다누만
성내동 처녀 총각들 입가에 묘한 미소 번지고
나 같은 아새끼들은 미치고 환장하는 거지
빰빠라빰빠 나팔소리 들리고 깃발 휘날리면
선생님 말씀도 엄마 잔소리도 귀에 안 들어오고
황금동 감천냇가 드넓은 모랫벌에 차일이 쳐지면
가슴이 벅차 잠을 못 잤었다 훔쳐낸 돈으로 보았던
서커스 동춘서커스 봐도 봐도 신기하고 희한하대이
온갖 기기묘묘한 것들 갖가지 기상천외한 것들
이 세상 진기한 것들 차일 안에 다 모여 있었지
짜릿한 것들, 우스꽝스런 것들, 미치도록 예쁜 것들,
흥분케 하는 것들, 황홀케 하는 것들을 보며
내지르는 비명과 탄성, 내던지는 헐벗음과 배고픔
나이도 잊고 환호작약 귀천도 잊고 박장대소
사람이 어쩜 저렇게 몸을 휙휙 돌릴 수 있을까
잽싸게 놀릴 수 있을까 눈 깜짝할 사이에 바람처럼
메뚜기처럼 개구리처럼 다람쥐처럼 강아지처럼
돌고 뛰고 돌리고 굴리고 떨어지고 솟구치고
재주 참말로 신기하대이 뭘 먹어 사람 몸이 저렇노
오금이 저리고 오줌이 지리고 방귀도 뀌어가면서
웃다 보면 감천냇가에도 아랫장터에도 밤이 내리고
내 생애 최초, 최고의 황홀경은 그렇게 왔었네
나 그날 밤에 난생처음 몽정이란 걸 했다네
동춘서커스 그 가시나가 자꾸 눈웃음을 치며
내 옷을 벗기고 자기도 옷을 벗고서 이상한 짓을……
서커스 동춘서커스 봐도 봐도 신기하고 희한해서
연짱 사흘을 나 그 차일 안에서 살았네 나 그때
아부지한테 들켜서 죽지 않을 정도로 얻어맞고
나 지금도 ‘東春서커스단’ 펄럭이는 깃발을 보면
흥분을 못 이겨…… 반은 미치네, 아니, 미쳐버리네
―『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시학, 2007)에서

<해설>
내가 어렸을 때 김천시 외곽에 있는 감천냇가에서 하는 동춘서커스를 보러 갔을 때, 사실은 집의 돈을 훔쳐내서 간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갔었다. 즉 이 시의 어떤 부분은 허구이고 어떤 부분은 사실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나 6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김천시의 아저씨와 아줌마들을, 처녀와 총각들을 며칠 동안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은 동춘서커스단이었다. 남사당패가 길군악을 앞세우고 동네에 들어와 공연 고지를 하는 것처럼 동춘서커스단의 어릿광대가 시내 중심가를 한나절 휘젓고 다니면서 광고를 한다. 벽보를 붙이거나 전단지를 나눠주며 광고하면 아무 날 저녁에 가서 반드시 봐야지 하고 결심을 한다.
그때는 1년 내내 별다른 구경거리가 없었는데 동춘서커스단이 들어왔다는 것은 복음이고 축복이었다. 평소 무뚝뚝한 아버지가 혼자 가기엔 어색했는지 나를 데리고 가주셨다. 사복 입은 경찰관인 아버지는 입장권도 반액을 낸 것 같다. 서커스 출연진의 기기묘묘한 몸동작은 나를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로 빠뜨렸다. 아버지를 따라 어린 나는 박수를 치고 박장대소를 하곤 했다. 삼각형 비닐봉지에 들어 있는 볶은 땅콩의 맛도 기억난다. 평소와 달리 이날은 아버지가 군것질거리도 사주셨던 것이다.
위키백과에서 동춘서커스단의 역사를 찾아보았다. 동춘서커스단은 1925년 일본인의 서커스단 직원이었던 동춘 박동수에 의해 창단된 대한민국 최초의 서커스단이라고 한다. 목포에서 결성된 동춘서커스단은 196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배삼룡, 이주일, 허장강, 장항선, 서영춘, 남철, 남성남 등의 스타를 배출해내는 등용문 역할을 했다고.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TV 드라마 등과의 경쟁력을 상실하여 서커스단의 인기가 하락했고 현재는 대부분의 단원이 중국인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2009년 11월 15일, 계속되는 재정난과 서커스가 갈수록 인기를 잃고 사양화되자 청량리 공연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할 예정이었다. 그러자 동춘서커스단을 살리자는 국민 여론이 형성되어 모금 운동이 벌어졌고, 2009년 12월 16일 문화관광부가 전문예술단체로 등록, 기부금을 공개 모금할 수 있는 지정 기부금 단체가 되며 다시 기사회생하게 되었다. 현재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 대부도에 자리를 잡고 이곳을 기준으로 정기공연을 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공연이 중단되었지만 작년부터 다시 공연을 시작, 이제는 흑자를 보고 있다고 한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