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34) / 술 실력을 믿다가는 큰코다칩니다 – 이승하의 ‘아버지한테 면회 가다’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34) / 술 실력을 믿다가는 큰코다칩니다 – 이승하의 ‘아버지한테 면회 가다’
  • 이승하
  • 승인 2023.02.0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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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한테 면회 가다

이승하

이곳에는 술이 없습니다 아버지
숙취의 아침에 다시 마시는
해장술도, 외상 술값도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욕할 대상도, 발길질할 식구도

명정(酩酊)의 상태에서 기억이 끊겨
때때로 저를 보고
니 누고……?라고 물어보셨죠
아버지…… 저예요……
면회 오지 마라…… 고만 와……

지금은 손을 떨고 계시지 않네요
온갖 것을 보는 환각 증세와
온갖 소리에 시달리는 환청 현상
무조건 술 냄새라고 우기는 환취 현상
그 모든 금단 현상에서 벗어난 것입니까

이제는 정말 술 없이
살아가실 수 있는 겁니까
주기적인 자살 협박과 살해 충동
아버지 손에 부엌칼을 들게 한
좌절감과 열등감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고……

아버지는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 낀
한 마리 바퀴벌레였어요
눈치를 보다 술로 달아나던
술로써만 해방감을 만끽하던
손을 떨다가도 당당하게, 호탕하게

아버지
이 병원 문을 도대체
몇 번이나 다시 들어와야
그 술, 술의 쇠사슬에서
풀려나시는 겁니까
술의 유혹 술의 협박
아아, 술의 압제에서.

―『뼈아픈 별을 찾아서』(달아실, 2020)에서

일러스트=한송희 에디터

<해설>

알코올중독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니 아주 심각하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독자 수가 통계에 잡힌 이만 2018년 150만 5390명, 2019년 151만 7679명, 2020년 152만 6841명을 기록하며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중독자 중 진료를 받은 이의 수는 2018년 7만 1719명, 2019년 7만 1326명, 2020년 6만 4765명으로 감소하고 있단다. 어쨌거나 알코올 중독자는 현재 150만 명이 넘고 그중 6~7만은 병원에 가서 치료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술이 없는 인생은? 재미가 없다는 것이 애주가들의 답일 것이다. 회식 중의 두세 잔이나 반주 정도면 문제 될 턱이 없다. 약간의 흥분을 가져오고 즐거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술만 한 게 없다. 술맛을 아는 사람들은 목을 타고 찌르르 넘어가는 술의 그 오묘한 맛을 모른다면 인생의 낙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 시에서는 알코올 중독증이 너무 심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버지를 면회 간 아들이 화자로 나온다. ‘필름’이 끊기면 아들도 못 알아보고 ‘니 누고?’ 하고 묻기도 하고, 이성을 상실한 상태에서 칼부림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알코올 중독자들의 세계를 취재하면서 확인한 팩트들이다. 희한한 일은 손을 떨다가도 술이 들어가면 손을 떨지 않고 정신이 반짝 들어오는 경우가 있더라는 것. 화자는 아버지의 알코올중독을 최대한 이해하는 점에서 효자에 가까운데, 가족 간의 정도 떼게 하는 것이 사실은 왕창 마시는 술, 이성을 마비케 하는 술이다. 

술 권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일까? 전에는 대한민국의 회식문화에서 억지로 술을 마셔야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문제는 술이 술을 부른다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코로나 사태 이후 취객들이 우르르 3차, 4차로 가서 대취하는 일이 줄었다는 것. 그러나 음주운전 보도는 줄어들지 않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최근에 국민동의청원에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1월 25일에 올라온 해당 청원은 현재 4천 명이 넘게 동의했다. 청원이 종료되는 2월 24일까지 5만 명의 동의를 얻으면 국회 소관 상임위에서 논의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고 한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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