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55) / 빼앗긴 시간, 빼앗긴 청춘, 빼앗긴 돈―이승하의 ‘빼앗긴 시간’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55) / 빼앗긴 시간, 빼앗긴 청춘, 빼앗긴 돈―이승하의 ‘빼앗긴 시간’
  • 이승하
  • 승인 2023.02.2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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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민우
사진=이민우

빼앗긴 시간
―일본군 위안부 황옥임 할머니의 영결식을 보고

이승하

거칠게, 더욱 거칠게 다루어다오
나는 그때 이후 64년 세월을
이판사판의 삶만 살아왔다

왜놈들이 몸을 더럽혀
아들딸도 못 낳게 된 내가
무엇에 의지해 살아왔는지를 아느냐

악에 받쳐 살다가 악몽만 꾸다가
아픈 몸 끝내는 병만 남아
광주군 나눔의 집을 거쳐
중계동 노인복지관까지 왔으니
함부로, 더욱 함부로 말하여다오

관심을 표하는 너희들의 말
온정이 담긴 너희들의 말
내 아직껏 들어본 적 없으므로

아픔이 어린 나를 어른으로 만들었고
설움이 젊은 나를 늙은이 되게 했으나
나는 그날을 잊지 못해 이 악물고 살아왔고
억지로, 억지로 살아왔다

그러니 너희들은 나를
지금처럼은 말고
그때처럼 거칠게
사뭇 거칠게 다루어다오.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문학사상사, 2018)에서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일본군 위안부’를 대체할 다른 용어가 확립되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이 용어를 쓰지만, 쓸 때마다 기분이 영 좋지 않다. 영어권에서는 ‘일본에 의한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를 쓰고 있는데 이 말이 본질에 가깝다. 일본은 전선에 투입된 자국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고 성병을 관리할 목적으로 조선인 여성 수백 내지 수천 명을 끌고 가서 성노예로 부렸으니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식민지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의 여성이 강제로 동원되었는데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여성들이 가장 많았다. 

극영화 <귀향> <아이캔 스피커>나 다큐영화 <김복동>에서 잘 그려져 있듯이 전시에 10대와 20대 미혼 여성을 교묘하게 회유하여 끌고 갔으면 사과하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각국 피해자들과 민간단체 및 정부, UN을 비롯한 국제기구가 일본에 진상규명과 정당한 배상 요구에 대해 일본 정부는 이 핑계 저 이유를 대며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는 외국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지면 그 나라 사람들이 못 보게끔 온갖 방해 공작을 하고 있다. 이 시는 65세 때 돌아가신 황옥임 할머니를 화자로 삼아 전개되고 있다. 일본의 후안무치에 대해 비판하면서 너희들이 계속 재판정에서 그런 식으로 발뺌을 할 거면 그때처럼 나를 거칠게 다뤄보라고 볼멘소리로 항의하고 있다. 이 악물고, 억지로 살아온 그분들을 『창작21』의 문창길 시인 등과 찾아뵌 것이 이 시를 쓰는 동인이 되었다. 

윤미향 의원은 벌금형이 내려져 의원직이 유지된다고 한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11부는 윤미향 의원에 대해 검찰이 제기했던 14개 혐의 가운데 13건에 대해 무죄, 업무상횡령에 대해서만 벌금 1500만 원을 선고했다. 검찰은 윤 의원이 2011~2020년 동안 1억37만 원을 217회에 걸쳐 횡령했다고 했지만 법원은 68회 1718여만 원만 횡령으로 봤다. 윤 의원은 1심 법원에서 유죄로 본 횡령 혐의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심에서 결백을 밝히겠다고 했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윤 의원의 법적 다툼은 항소심에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설사 68회 1718만 원만 횡령한 것이 맞다고 하더라도 어디 돈 훔쳐낼 데가 없어서 그분들의 복지에 쓸 돈을 자기가 몰래 썼다니 하늘이 부끄럽지 않은가.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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