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56) / 1인 가정, 독신의 시대―조경선의 ‘하루에 한마디 하는 여자’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56) / 1인 가정, 독신의 시대―조경선의 ‘하루에 한마디 하는 여자’
  • 이승하
  • 승인 2023.02.2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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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민우
사진=이민우

하루에 한마디 하는 여자

조경선

나무와 나무 사이 한여름의 입덧처럼
뜸 들여 답답해진 혼잣말이 오고 간다
스스로 울다 간 소리
마당 가득 풀만 키운다

하루에 한마디 듣는 새들도 날아간다
힘에 부쳐 멀리 왔다는 한마디 탄식에
울음을 열어젖힌 후
그 소리만 파먹는다

부엌에 홀로 앉아 한마디 하는 여자
밥을 저어 주세요 전기밥솥 그녀의 말
오늘 중 유일하게 들리는
처음이자 마지막 소리

―『계간문예』(2020년 겨울호)에서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제목만 보고는 과묵한 여성과 살아가는 한 남성의 투덜댐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천만에, 독신 남성의 일과를 다룬 시조다. 한국의 1인 가구가 35%에 이른다고 한다. 나 홀로 집에 사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결혼 안 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혼, 졸혼 부부도 많다. 따라서 고독사가 늘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는 세월이 흐를수록 인구가 줄어들겠지만 1인 가구는 더 늘어날 거라고 예상한다.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다. 컴퓨터를 켜놓고 게임을 해도 되고 넷플릭스 영화를 봐도 된다. 유튜브를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배가 고프면 배달음식을 시켜 먹어도 되지만 밥만 하면 반찬은 온갖 걸 다 파니까 냉장고 안에 두었다가 데워먹으면 된다. 아마도 그 독신남은 때로 혼잣말을 할 수도 있다. 

시조의 첫째 수를 보니 사는 곳이 농촌인 것 같다. 농촌의 노총각이 장가가기 어렵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새들의 울음소리도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도 때로는 정답게 들린다. 텅 빈 집에서 소리를 들려주는 존재이니까. 전기밥솥에 쌀을 씻어 넣고는 30분쯤 있으면 기계가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니 얼마나 반가운가. 그런데 그 목소리는 기계음이다. 오늘 중 유일하게 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여자의 목소리가 하는 말이 고작 “밥을 저어 주세요”이다. 싱글의 징글징글한 외로움을 잘 그린 이 작품을 읽고 공감하는 사람이 무척 많을 것이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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