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57) / 아이도 삼각관계 연애를 할 수 있다― 박소이의 ‘틈바구니’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57) / 아이도 삼각관계 연애를 할 수 있다― 박소이의 ‘틈바구니’
  • 이승하
  • 승인 2023.02.26 04:00
  • 댓글 1
  • 조회수 9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이민우
사진=이민우

틈바구니 

박소이 

엄마 아빠 다툰 날,
두 사람 사이에 낀 날
끔찍해

더 끔찍한 건
이종우와 고아라 사이에 내가 끼어
삼각관계가 됐다는 소문이 돈다는 거지

정말,
더욱더 끔찍한 건
엄마와 아빠가 다퉈 벌어진 틈
어떻게 메워야 하나 생각하느라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야

진짜,
말도 안 되게 끔찍한 건
이종우와 고아라 사이에 엄청나게 큰 틈이 생기길
바라고 있는 거지

―『동시 먹는 달팽이』(2022년 가을호)에서

사진=이민우
사진=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두 가지 이야기가 교대로 나온다. 엄마와 아빠가 다툰 날, 그 틈바구니에서 난감해하는 아이가 있다. 아이로서는 부모가 목소리를 높여 싸우면 누구를 편들 수도 없고 정말 난처해진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아이 셋이 삼각관계 연애에 빠졌다는 것이고, 이종우와 고아라 사이가 나빠져 내가 이종우와 잘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연애를 하지 말란 법이 없고, 그 연애가 삼각관계에 돌입해 질투와 배신이 교차되는 인간관계를 연출하게 될지 알 수도 없다. 이 동시의 시적 화자는 고아라가 떨어져 나가고 자기가 이종우와의 사이가 좋아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런 연애담을 담은 동시가 창작되니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라고 해서 숭고미와 천진성만 추구할 수는 없다. 아이들 세계가 어른 세계의 축소판일 수도 있다. 어른들은 사춘기가 중학생이 되어야 온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여러 면에서 조숙하다. 그런 아이들의 세계를 다뤄도 얼마든지 동시가 될 수 있다. 동시여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고, 아이들의 정서에 맞게 써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편견이다. 아이들도 질투심, 증오심, 외로움, 괴로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지 않는다. 아이들의 세계를 현실감 있게 써야지 동시가 될 수 있음을 알겠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kuk0 2023-03-03 19:36:25
요즘 아이들의 생각이 더욱 궁금해지네요! 멋진 시를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