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58) / 타인의 고통에 민감한 자가 시인이다 – 문덕수의 ‘오늘 누구를 만났지’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 (58) / 타인의 고통에 민감한 자가 시인이다 – 문덕수의 ‘오늘 누구를 만났지’
  • 이민우
  • 승인 2023.02.27 13:45
  • 댓글 1
  • 조회수 1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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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누구를 만났지

문덕수

너는 오늘 누구를 만났지
왜 말이 없어 애인라도 만났느냐 말이다
아니요 거리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어요
애인이고 뭐고 모두들
걸프전에 총 메고 나가거나
미사일 구경이나 간다고들 모두 비었어요
그래도 누구를 만났겠지
하다못해 개미라도 보았겠지
아니요 거리가 좀 멀어서 그런지
보이는 것은 빌딩과 빌딩과 빌딩
보이는 것은 트럭과 버스와 승용차나
트렉터와 포클레인과 공장과 굴뚝과 

하늘에서는 분명히 새가 아니고
전투기라고들 하는데 글쎄 모르겠어요
그리고 몇 가지 소문도 들었지요
레바논인가 하는 데서는 폭탄 테러
폭탄 테러에 20명이나 죽고
에티오피안가 하는 곳에서는
작년부터 계속 수백 만이 굶주려 죽는답니다
예끼 이놈 그런 불길한 소리만 
아니예요 그것뿐이 아니예요
1983년에는 소련의 미사일을 맞아
KAL에 탄 269명이 몰사했답니다
너는 오늘 누구를 만났지
복도의 거울 속에서 나를 보았지요
아직도 간신히 살아남아 있는

―시집 『수로부인의 독백』(시문학사, 1991)에서

 

<해설>

봄이 오면 생명을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고 낙엽이 지면 생의 비애를 느끼는 것이 시인이다.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고 인정 미담에 목마른 존재가 시인이다. 하지만 시인은 그 누구보다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측은지심과 자비, 보시 같은 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과 용서와 참회가 시인의 마음에 깃들면 더욱더 숭고한 시가 탄생할 것이다. 나 자신이 겪고 있는 아픔에 대한 호소보다는 타인이 아픔에 대한 연민의 정이 그 시인의 시를 빛낼 것이다.

문덕수 시인이 90년대 초에 쓴 이 시에는 그 시대의 비극적 현상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다. 제일 먼저 걸프전을 언급하고 있다. 걸프전은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해 점령하자 미국ㆍ영국ㆍ프랑스 등 34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개한 전쟁이다. 걸프전은 스커드 미사일을 요격하는 패트리엇 미사일,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는 스텔스 폭격기 등 첨단무기가 사용된 전쟁이었다. 우리에게 중동은 대규모 건설현장에 노동인력을 파견하여 70년대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 곳이었는데 어느덧 전장이 되어 있었다. 그때 본 것은 새였는데 걸프전이 일어나자 전투기가 하늘을 차지하였다. 이라크인 20만 명이 죽었다.  

레바논에서는 폭탄 테러로 20명이 한순간에 죽었고 에티오피아에서는 엄청난 사람들이 굶주려 죽고 있다. 시인은 또 “1983년에는 소련의 미사일을 맞아 KAL에 탄 269명이 몰사했답니다”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펼쳐 보여주고 있다. 뉴욕발 서울행 대한항공 보잉747 여객기가 1983년 9월 1일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어 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는데 조종사의 실수로 항로를 이탈했을지라도 왜 전투기가 민간항공기에 미사일을 쏘았는지는 소련이 해명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다.

우리가 맞이하는 이 하루는 죽지 않았으면 생존한 것이다. 비극은 어디서나 언젠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런 비극의 현장을 나 몰라라 하지 않고 직시하는 존재, 바로 시인이다. 시인은 「죽음의 계절」에서도 “어제는 공사중 교량이 내려앉아/세 사람의 인부가 깔려 죽었다/지난 여름 폭우에는/축대가 무너져 한 집안 식구가/그대로 생매장되었다”고 하면서 비극의 현장으로 눈길을 돌린다. 시인의 마음이 측은지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를 만나는가. 나를 만날 수 있으면 살아난 것이다. 그런데 시인이 가신 지도 어언 3년이 되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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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린 2023-03-23 20:06:39
한국의 시는 동시수준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