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요새
이경교
홋카이도에서 큰부리도요새를 보았다 진회색 깃과 붉은 부리, 유독 한 마리에게만 눈길이 쏠린 건 부리 옆 왼쪽 볼에 검은 털이 점처럼 박혀있었기 때문, 나는 새의 보조개를 떠올렸다 일행들 모두가 새의 보조개라고 소리쳤다
이 섬은 베링해나 캄차카반도에서 발진한 철새들이 알류샨 열도를 따라 내려온 디딜목, 이곳 새들이 유랑자처럼 후줄근한 연유다 휴식마저 날개에겐 다시 시작될 노역의 준비에 불과하다 철새들은 떠나기 위해 꾸역꾸역 몰려든다 그러다가 발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신호처럼 한 마리가 날아오르면 다시 출발이다 유랑하는 새들에겐 성채가 필요 없다 그들의 신앙은 움직임이니까
홋카이도를 떠나, 천수만 철새도래지를 찾은 내 눈에 보조개를 가진 도요새가 포착된 건 한 달 사이다 왼쪽 볼에 박힌 검은 털, 아니 선명한 보조개! 아, 바로 너로구나! 내가 소리치자 그 새도 나를 알아본 듯 왼쪽 볼을 몇 번 실룩거린다 보조개를 깊게 파고 웃는다
―시집 『나는 죽은 사람이다』(걷는사람, 2023)에서

<해설>
도요새 중에서도 큰부리도요새의 생태에 대한 섬세한 보고서 같은 시다. 도요새는 12〜65cm밖에 안 되는 비교적 작은 새인데 이동 경로를 보면 정말 경이롭다. 베링해나 캄차카반도에서 발진하여 알류산 열도를 따라 내려오다가 홋카이도에서 숨을 돌리는 모양이다. 홋카이도에서 다시 천수만 철새도래지까지 온다. 도대체 몇 km일까?
부리 옆 왼쪽 볼에 검은 털이 점처럼 박혀있는 것이 보조개를 연상케 했나 보다. 그렇게 희한하게 생긴 큰부리도요새를 홋카이도에서 보았는데 한 달 만에 천수만에서 같은 모양의 새를 보았으니 시인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쳤고, 그 새도 나를 알아본 듯 왼쪽 볼을 몇 번 실룩거린다. 같은 새일 리는 없겠으나 생명체와 생명체가 만나는 경이로운 교감의 순간이다.
이 시에서 참으로 감동적인 부분은 큰부리도요새와의 재회 장면일 수도 있겠지만 “신호처럼 한 마리가 날아오르면 다시 출발이다 유랑하는 새들에겐 성채가 필요 없다 그들의 신앙은 움직임이니까”라는 대목이다. 그 가냘픈 날개를 퍼덕거려 수백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새들이 있다. 뭘 먹고 그 먼 거리를 날 수 있는가. 도요새가 올 때 천수만에 가보고 싶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